진경호 논설위원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로렌스 피터가 수백건의 무능력 사례를 연구한 끝에 1969년 결론지은 ‘피터의 법칙’이다. 폐쇄적 관료사회의 병폐를 지적할 때 흔히 인용된다. 세월호 참사에서 우린 피터의 법칙을 생생하게 구현하는 관료집단을 똑똑히 목도했다.
하긴 관료사회의 문제가 비단 무능력뿐이겠나. “한 손은 노 땡큐 다른 손은 땡큐 땡큐 / 높은 놈껜 삽살개 낮은 놈엔 사냥개라 / 공금은 잘라먹고 뇌물은 청해 먹고…” 김지하의 ‘오적(五敵)’에 담긴 관료집단의 부패상은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달라진 게 없다.
김대중(DJ) 정부에 외환위기를 부른 관료집단은 대표적 개혁 대상이었다. DJ의 ‘행동대장’인 새정치국민회의 김옥두 의원이 1998년 11월 펴낸 정책자료집이 관료집단을 바라보는 집권세력의 정서를 잘 보여준다. 김 의원은 ‘개혁대상 공무원’을 10개 유형으로 적시했다. ①스프링형(사정이 시작되면 복지부동하다 잠잠해지면 튀어오르는 형) ②권생권사형(권력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줄대기형) ③투덜이형 ④로봇형 ⑤하이에나형 ⑥물귀신형 ⑦카멜레온형 ⑧핑퐁형 ⑨터줏대감형 ⑩마피아형 등이다.
살아남을 공무원이 없을 듯싶지만 이런 ‘순진하고 단순한’ 포부였기에 DJ정부의 공직 개혁은 실패했다. DJ정부뿐이 아니다. 내놓고 관료집단을 ‘공적 1호’로 삼았던 김영삼 정부도 마찬가지다. 1980년 서슬 퍼런 전두환 국보위 체제에서도 공직자 8877명이 숙정됐지만 관료집단은 건재했다. 사회진화론의 관점에서 관료조직은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다. 어떤 환경에서도 그들은 살아남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관료집단의 폐해를 지적하며 공무원 인사시스템 개혁을 정부에 주문했다. 번지수가 잘못됐다. 개혁의 대상에게 개혁의 주체가 되라고 한 셈이다. 사회과학에 복잡계 이론이 접목된 지도 10여년이 흘렀지만, ‘관료와의 전쟁’은 이렇듯 여전히 단선적이다.
공무원을 욕하면서 저마다 공무원 되겠다고 앞을 다투는 사회 전체의 모순을 잡아야 한다. 국가 개조는 관두고 공직 개혁이라도 해보겠다면 정부 말고 시민이 나서야 한다.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중심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jade@seoul.co.kr
2014-05-0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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