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구 편집국 부국장
과거 대형 참사와 달리 이번 사고의 희생자는 이벤트 업체 직원을 빼고는 모두 극심한 학업·진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새내기 대학생이다. 학교 폭력과 입시 경쟁의 지옥, 불확실한 미래로 인한 우울증, 그리고 막다른 선택까지…. 생채기를 입어가며 어둠의 터널을 막 거쳐온 젊은이들이다. 왜곡된 교육 시스템에 부실과 안전 불감증의 구조적 인재까지, 우리 사회는 이들에게 이중 삼중의 고통과 비극을 안긴 셈이다.
그래서일까. 피해 학생들의 심리검사 결과 PTSD 고위험군에 속하는 학생이 173명이나 된다고 한다. 학생들의 PTSD를 상담·치료하는 심리지원센터 관계자는 “원래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등을 갖고 있던 학생들이 이번 사고로 증상이 더 심해졌다”고 전했다. 이들은 전형적인 PTSD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 공사장이나 사고 체육관과 비슷한 구조의 건축물을 피해 다니고, 천장이 높고 음악 소리가 들리는 채플시간에도 공포감을 호소한다.
PTSD는 망각할 수 없는 어둠의 그늘이다. 불면증과 악몽, 환청, 호흡곤란, 감정조절력과 언어능력 저하, 촉각·시각·청각 등의 이상 증세, 외부 자극에 대한 무감각…. 기억의 심연에서 고통을 지우고 싶어도 순간순간 뇌리와 신경계를 쥐어짜는 듯한 악몽과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2003년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 당시 생존자 20여명의 뇌를 2년 뒤 단층 촬영한 결과 감정과 공포를 조절하고 문제해결 능력을 관장하는 대뇌의 전두엽과 측두엽이 심하게 훼손된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어떤 이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또 다른 이는 매일 약을 한 움큼씩 삼켰다.
우리는 망각한다. 잊고 잊힘의 반복이 없다면 우리의 뇌는 과부하에 걸려 일상의 스트레스를 견뎌내기 힘들지 모른다. 그래서 망각의 동물이다. 하지만 대형 참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붕괴와 화재의 현장에서 간발의 차이로 생사를 넘나든 생존자들에게는 사치스러운 넋두리일 뿐이다.
반복되는 참사와 비극의 가해자는 결국 우리 사회다. 따지고 보면 사회적 상해이며 공동체의 폭력이다. 학교, 지역사회, 정부 할 것 없이 심리적 외상에 시달리고 있는 학생들의 중·장기적인 치료·관리에 소홀함이 없어야 하는 이유다. ckpark@seoul.co.kr
2014-03-2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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