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자의 신화로 문화읽기] ‘지혜로운 자’, 빛나는 눈을 가진 그들은

[김선자의 신화로 문화읽기] ‘지혜로운 자’, 빛나는 눈을 가진 그들은

입력 2020-10-05 20:14
수정 2020-10-06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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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자 연세대 중국연구원 전문연구원
김선자 연세대 중국연구원 전문연구원
윈난성과 구이저우성은 중국에서도 소수민족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해발고도 2000미터가 넘는 산을 꼬불꼬불 넘어가면 마을 하나가 나오고, 산 하나를 다시 넘어가면 또 다른 마을 하나가 나오는 그런 곳에서, 그들은 오랜 세월 동안 마을 공동체를 유지하며 살아왔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들에게 ‘공동체’는 참으로 소중한 것이었기에, 그들은 많은 신화와 의례, 금기 등을 통해 그 공동체를 유지해 왔다. 높고 험한 고원지대에서 마을 공동체를 떠나 홀로 살아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에 더욱 그러했을 터, 자연과의 공존을 기본으로 하는 샤머니즘적 사유에 기반을 둔 종교를 바탕으로 그들은 오랜 세월 동안 살아왔다.

‘샤머니즘’이라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상당히 왜곡되어 알려져 있는데, 사실 샤머니즘의 본질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에 있다.

아득한 옛날 인간이 야생의 자연 속에 맨몸으로 서 있었던 시절, 인간은 자연의 소리를 들었고 자연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남보다 조금 더 ‘지혜로운 자’들은 자연이 전해 주는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들려주었고, 그들은 자신을 둘러싼 자연과 공존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지혜로운 자’들은 사람들에게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일 것을 권했다. 자연이 준 것들을 낭비하지 말고, 환경을 함부로 파괴하지 말 것이며, 가진 것 없는 자들에게 자신의 것을 나눠 주기를 권했다. 다른 사람에게 오만하게 굴어서는 안 된다고 했고, 파괴와 치유의 힘을 동시에 지닌 자연 앞에서 늘 겸허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이 바로 소수민족 종교의 사제들이다. ‘돔바’나 ‘비모’, ‘베이마’, ‘모바’ 등 민족마다 여러 가지 호칭으로 불리지만, 그 의미는 모두 같다. ‘지혜로운 자’라는 뜻이다. 그들의 종교는 기본적으로 샤머니즘적 사유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만주 지역의 ‘샤먼’과는 그 성격이 좀 다르다. ‘비모’나 ‘돔바’ 등은 종교 지도자이면서 동시에 그 민족이 오랜 세월 동안 전승해 온 지식의 전수자이기도 하다.

하니족의 사제인 ‘베이마’에 관한 신화가 그것을 알려준다. 하니족은 머나먼 북쪽에서부터 이주해 왔다는 역사를 전한다. 그들은 원래 문자와 종교 경전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먼 길을 이주해 올 때 큰 강을 건너야 했는데, 그때 강물의 신이 하니족의 경전을 탐냈다. 베이마가 경전을 머리 위에 이고 물을 건널 때, 강물의 신이 그 경전을 빼앗으려고 파도를 휘몰아치게 했고, 베이마는 그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입에 넣고 꿀꺽 삼켜 버렸다. 바로 그 일 때문에 하니족의 사제인 베이마의 뱃속에는 지혜가 가득하다고 한다.

하니족과 달리 이족이나 나시족은 일찍부터 문자를 사용했고, 수많은 경전을 전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족의 사제인 비모나 나시족의 사제인 돔바는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이 전해온 모든 지식의 전수자이며 지혜로운 자이다. 사람들이 돔바나 비모를 존경하는 것은 그들이 세속적인 권력이나 돈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마을의 사제는 돈을 받고 의례를 행하지 않는다. 탄생과 결혼, 죽음 등 마을 주민들의 중요한 순간에는 늘 사제가 있지만, 사제들은 마을 주민과 수평적 관계에 있다. 빛나는 눈빛을 가진 그들을 마을 사람들이 존경하는 것은, 한 줌도 안 되는 세속의 권력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품고 있는 넓은 지식과 깊은 지혜 때문이다.

당분간은 ‘코로나’라는 전염병과 함께 갈 수밖에 없는 이 시대에, ‘지혜로운 자’의 형형한 눈빛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집단 행위를 부추기는 일부 종교 지도자들, 결국은 코로나에 걸려버린 미국 대통령을 보면서 다시 드는 생각이다.
2020-10-0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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