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희령의 다초점 렌즈] 왜 그렇게 빨라야 할까

[부희령의 다초점 렌즈] 왜 그렇게 빨라야 할까

입력 2020-11-01 17:24
수정 2020-11-02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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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희령 소설가
부희령 소설가
늘 그렇지는 않지만 약속 시간보다 20~30분 일찍 도착하는 경우가 잦다. 조급증 탓이다. 그러다 보면 만나기로 한 사람이 10분쯤 늦어도 나로서는 30분 이상 기다린 셈이 된다. “오래 기다렸다”는 말을 기어코 하고야 만다. 시간은 돈인데 말이야, 억지를 부리면서. 이따금 문득 궁금해진다. 시간은 언제부터 돈이 됐을까.

시대에 따라 시간의 개념은 변화했다. 농경 사회였던 조선 시대에는 촌각을 다툴 일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시간보다는 날이나 달, 계절이 중요하다. 해시계나 물시계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개인용은 아니었다. 약속 시간은 어떻게 정했을까. 저녁밥 먹고 나서 물방앗간으로 오라든가, 아침 나절에 은행나무 아래에서 기다리겠노라 했을까. 늦게 왔다고 한 소리 들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중세 유럽에서 시계는 성당의 미사 시간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기계식 시계가 발명된 15세기 이후에는 도시마다 시민들이 시계탑을 세워 달라는 청원을 하곤 했다. 생활의 질서를 위해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계가 알려주는 시간은 단지 객관의 지표였을 것이다.

요즘 읽고 있는 영국의 역사학자 시어도어 젤딘의 책에서는, 시간을 분 단위까지 정확하게 지키도록 강요하기 시작한 건 산업혁명 초기의 기업가들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당시 노동자들은 정해진 시간에 공장에 나와야 하고, 마음대로 들락날락하지 못하며, 쉬고 싶을 때 쉬지 못한다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단다. 본격적인 산업사회로 들어서면서 시간 엄수가 생활의 미덕이 됐고, 시간이 돈이라는 은유가 널리 사람들을 설득하는 힘을 지니게 됐을 것이다.

시간이 무엇보다도 절박하게 돈이 되는 지점은 노동을 단지 시간 단위로 계산하는 게 아니라 효율로 계산할 때다. 번역이 생계가 된 뒤 나는 시간당 얼마의 급여를 받는지 계산해 보곤 했다. 한 시간 동안 원고지 몇 장을 번역하는지 헤아려 보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빨라야 먹고살 만큼 번다’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한눈을 팔지언정 모니터 앞을 떠날 수 없다. 친교 모임을 위한 외출 같은 건 당연히 마감 뒤로 계속 미뤄지고.

같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속한다고 해서 내가 택배 노동자와 같은 노동 강도를 체험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건당 얼마로 계산하는 수수료 체계나 노동시간에 포함되지 않는 배송 이전의 분류 작업, 몸을 쓰는 일임에도 산업재해보상법의 적용 대상이 되지 않는 부당함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구조의 톱니바퀴 속에서는 밥 먹는 시간도, 잠자는 시간도, 아플 시간도 허락되지 않는다. 이쯤 되면 시간이 돈이 아니라 주인님이다. 이윤의 가속도가 붙은 톱니바퀴는 어느 정도까지 옥죄어야 사람이 버틸 수 있는지 한계를 측정해 보는 실험 장치 같다. 예상치 못했던 바이러스로 인해 벌어진 비대면 사태가 그 한계를 살짝 넘어서게 했으나 장치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슬픈 예측을 버리기 힘들다.

시계가 필요 없던 시대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임금노동도 자본주의도 돌이킬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산업혁명 초기도 아니고 노예제도도 존재하지 않는다(정말일까?). 사람은 밥 먹고 잠자고 일하는 시간 외에도 빈둥거릴 시간이 필요한 존재라고 알고 있다. 자신에게 맞는 생활수준을 선택하고 (혹은 받아들이고) 그렇게 사는 데 필요한 만큼만 일하는 것이 아마도 자유일 것이다. 이 세상 누군가는 자유롭게 살고 있을까. 사람들은 정말 자유를 원하는 걸까. 모르겠다. 다만 지울 수 없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맴돌 뿐이다.

왜 그렇게 빨라야 할까.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2020-11-0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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