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민아의 일상공감] 감칠맛 오지랖

[배민아의 일상공감] 감칠맛 오지랖

입력 2019-04-09 17:30
수정 2019-04-10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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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아 미드웨스트대 교수
배민아 미드웨스트대 교수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비교적 이르게 월간 잡지의 데스크를 맡았다. 매달 월간지의 새로운 이슈를 위해 다양한 관심거리를 찾다 보니 흔히 말하는 오지랖은 일을 위한 필수 요건이었고, 여러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적절한 윤활제가 됐다.

결혼 이후 풀타임 일터 대신 자유롭게 파트타임 일을 하면서 더이상의 오지랖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여자는 그 이전에도 자신이 오지랖 넓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결혼 후 남자로부터 종종 오지랖이 지나치다는 말을 듣곤 한다.

여자의 성향이요 장점이라 생각했던 사교적인 관계 형성, 타인에 대한 관심이나 배려 등이 남자의 눈에는 그저 오지랖으로 보였나 보다. 남자는 오지랖이 오히려 관계를 방해한다고 하고, 여자는 그 정도는 일반적인 사회적 관계이며 마땅한 조언이요 친절이라며 대립각을 세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오지랖 넓게 행동한 일이 많긴 많았다. 일과 관계된 교육이나 출판, 사진, 종교 등의 모임이나 동호회 활동은 그렇다 쳐도 영화, 여행, 등산, 음악, 시사, 심지어는 별 관심도 없던 부동산 관련 동호회의 카페지기까지는 다소 과하긴 했다. 오지랖의 결과로 얻은 아이디어나 지인들 덕에 일에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에 못지않은 오해와 상처, 손해 등으로 정신적, 경제적 피해도 컸다.

연애 경험도 별로 없던 비혼 시절 부부싸움으로 속상해하는 지인들에게 상대방의 장점을 보라며 달래 주다 네가 데리고 살라는 항변 앞에 멋쩍은 미소만 지은 적도 몇 번이고, 유지할 능력도 없이 가입한 보험들은 설계사 수당 지급이 끝난 후 슬쩍 해지한 것도 여럿이었으며, 싸우는 두 친구를 말리다 양쪽으로부터 마음의 깊은 상처를 받은 일도 있었다.

우연히 만난 낯선 이에 대한 오지랖도 탈이다. 독일이 우승했던 2014년 월드컵 결승전 날 때마침 독일 여행 중이었던 터라 현지에서의 거리응원전을 기대하며 들뜬 마음으로 응원용품을 구입하던 중 우연히 만난 한국 교민 모녀가 자신들이 아는 카페에서 함께 경기를 보자는 가벼운 제안에 여자는 남자를 설득해 굳이 그곳까지 찾아갔다. 결국 축제 분위기와는 전혀 무관한 한적한 카페에서 교민 사회의 넋두리만 두 시간 들어 주고, 응원 깃발 한 번 흔들지도 못한 채 저녁 식사 비용까지 모두 지불한 오지랖 3종 세트의 경험도 있다.

실질적으로 오지랖이 넓다는 말은 간섭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지나치게 참견하는 사람을 비꼬며 하는 말이다. 그래서 여자는 결혼 이후 대부분의 동호회도 탈퇴하고, 눈에 거슬리는 것은 안 보고, 하고 싶은 말도 안 하려 한다. 아니, 힘들게 참고 있는 중이다. 그녀의 근성인 오지랖은 아직 활화산이기 때문이다.

여자의 오지랖을 꾸준히 지적하는 남자도 걸핏하면 처음 만난 옆 테이블 사람들과 단번에 십년지기 지인인 양 유쾌하다. 2단계에서는 음식을 나눠주고, 안마도 해 준다. 3단계에서는 어깨동무하고 사진도 찍는다. 벌써 여러 번이다. 이 정도면 남자의 오지랖은 여자의 오지랖 3종 세트보다 더 강한 오지랖 3단 콤보다.

명절 3대 금기어가 취업, 결혼, 외모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가족이나 친척끼리의 인사말도 오지랖으로 치부하는 세상이지만 혼족과 개인주의만 팽배해지고 오지랖 없는 세상은 조금 심심할 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불필요한 간섭, 선을 넘은 참견, 주제넘은 잔소리가 아닌 사랑의 충고나 조언, 응원과 격려가 담긴 오지랖은 팍팍한 세상살이에 감칠맛을 내는 양념 정도는 되지 않을까.

사실 남자와 여자가 만난 것도 따지고 보면 낯선 여행지에서 발동한 오지랖의 성과다.
2019-04-10 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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