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사세요?”… 집과 동네, 사회·경제적 능력의 기준이 되다

“어디 사세요?”… 집과 동네, 사회·경제적 능력의 기준이 되다

임주형 기자
입력 2020-01-27 22:14
수정 2020-01-28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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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부동산 대해부-계급이 된 집] 4. 부동산 신(新)계급 사회

57%가 처음 만난 사람에게서 질문 받아
2030 젊은 세대는 ‘부동산 계급’ 인식 커
빚지더라도 강남 등 부촌 입성 욕망 강해
집값 좌우하는 건 교통·학군보다 ‘이미지’

강남 사람들은 되레 계급으로 생각 안 해
거주 만족도 94%… 비강남보다 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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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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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사세요?”

우리나라에선 인사처럼 건네는 이 질문을 통해 상대방의 사회·경제적 능력을 가늠하는 게 일상화됐다. 사는 지역과 주택 형태 등은 현대판 호패처럼 작용하며 사람들의 머릿속에 ‘보이지 않는’ 계급을 만들어 낸다. 27일 서울신문과 공공의창, 타임리서치가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도 우리 사회의 이런 모습이 여실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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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에 응한 1000명 중 57.1%는 처음 만났거나 아직 친분이 깊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어디 사세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집값 양극화가 심한 서울 사람이 이런 질문을 자주 받았다. 강남 3구 거주자는 68.9%, 비강남 거주자는 64.1%나 됐다. 인천·경기(59.0%)와 호남권(58.0%), 강원·제주(57.4%), 경북권(55.8%), 충청권(51.3%), 경남권(47.8%) 등에 비해 높은 비율이다.

10명 중 6명(62.6%)은 상대방이 사는 지역을 들었을 때 사회·경제적 능력을 가늠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런 적 없다’(33.6%)보다 2배가량 많았다. 젊은 세대가 자주 그랬다. 30대(74.7%)와 20대(19세 포함·64.9%), 40대(63.4%) 등에서 높은 응답률이 나왔다. 반면 50대(58.3%)와 60대 이상(56.4%)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부동산에 계급이 있다는 인식이 비교적 최근, 젊은 사람 위주로 형성됐다는 걸 시사한다.

‘부동산 계급사회’라는 책을 써 큰 호응을 받은 손낙구 보좌관(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중장년층은 집값이 지금처럼 오르기 전 여차여차해서 집을 장만한 경우가 많지만 2030세대는 부모 도움 없이는 내 집 마련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며 “이런 좌절감이 젊은 사람들로 하여금 부동산을 부의 상징으로 바라보게 한 것 같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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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을 져서라도 강남 등 부촌에 들어가고 싶은 욕망도 젊은층이 강했다. 20대(53.7%)와 30대(64.3%)에선 절반 이상의 응답이 나온 반면 50대(43.6%)와 60대 이상(31.4%)에선 비율이 뚝 떨어졌다. 빚을 지더라도 부촌 부동산을 구매하려는 이유는 가격이 더 오를 것이란 기대감(51.9%) 때문이었다. 집을 거주하는 곳이 아닌 투자나 투기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례가 많은 것이다. 인프라가 좋기 때문(18.4%)이라든가 일자리가 가까워서(15.1%) 등은 그다지 중요한 이유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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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건 강남 3구와 비강남 거주자 간 생각의 차이가 크다는 점이다. 비강남 거주자는 74.6%가 상대방 거주지역으로 사회·경제적 능력을 가늠했다고 한 반면 강남 거주자는 54.6%에 그쳤다. 20% 포인트나 차이가 났다. ‘비강남 사람’은 강남 등을 동경하며 부동산을 계급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지만 정작 ‘강남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강남’이란 고지에 올라보니 부동산 계급이 그다지 유효하지 않다고 깨달았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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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 따라 집값이 벌어지는 이유로 ‘이미지’(22.7%)가 가장 많은 표를 받은 것도 흥미롭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추상적인 인식이 강남 등 부촌의 집값을 더 가파르게 올린다고 보는 것이다. 교통(17.3%)이나 학군(16.7%), 일자리(11.4%) 등 전통적인 집값 상승 요인을 앞질렀다. 20대(23.3%)와 30대(24.4%), 40대(22.3%), 50대(22.7%), 60대 이상(21.7%) 등 모든 연령층에서 이미지를 가장 우선순위로 골랐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부동산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사람들에게 ‘왜 강남 아파트에 살고 싶은가’라고 물어보면 ‘부의 상징’이란 답이 가장 많다”며 “특히 서울 집은 어느 구에 속해 있는지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에 따른 서열이 구축돼 있고, 교통이나 학군보다 집값을 좌우하는 우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커뮤니티사이트 등 온라인에 종종 ‘강남 3구-왕족, 마용성-귀족, 서울 기타-평민’ 등과 같은 부동산 계급표가 올라오는 게 단순히 유머가 아닌 많은 사람의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남에 사는 사람의 거주지역에 대한 만족도(94%)는 상당하다. 비강남(72.8%)과 수도권(73.1%)보다 월등히 높은 비율이다. 특히 ‘매우 만족한다’는 답변도 40.6%나 나왔다. 강남 3구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매우 만족 응답이 10%대에 그친 것과 대비됐다. 강남 사람이 만족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교통(34.3%)이었다. 이 밖에 문화시설(16.9%)과 병원(14.6%), 안전(12.2%), 청결(10.2%) 등 여러 분야가 고른 선택을 받았다.

박해성 타임리서치 대표는 “우리 사회에서 부동산이 주거 공간보다는 자산으로서 계급을 형성하고 강화하는 수단으로 인식된다는 점이 확인됐다”며 “부동산에 대한 국민 인식이 변화하지 않고는 정부가 추진하는 부동산 안정 정책이 기대만큼 효과를 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세종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세종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2020-01-28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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