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수익률 ‘마이너스’…노후에 빈민으로 추락하나

퇴직연금 수익률 ‘마이너스’…노후에 빈민으로 추락하나

입력 2014-06-05 00:00
수정 2014-06-05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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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석(61·가명)씨는 올해 초 아파트 경비원으로 재취업했다.

월 급여는 130만원 남짓, 공휴일 없이 격일로 근무하면서 새벽 쪽잠으로 24시간을 버티는 고된 자리다.

”퇴직금은 중간정산으로 타서 썼고, 국민연금으로 매월 60만원 정도 나오는 게 전부입니다. 늦둥이 막내아들이 졸업도 못 했는데…도저히 생활이 안 되죠.”

경비원 자리라도 얻지 못했다면, 최씨 부부는 늘그막에 영락없이 궁핍한 생활을 해야 한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45.6%에 달한다. 절반이 빈곤층이라는 얘기다. 우리나라가 가입된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 노인 빈곤율이 12.7%인 점과 비교하면 지나칠 정도로 높다.

◇”노인빈곤 해결” 퇴직연금, 수익률은 마이너스

노인빈곤을 해결하려고 도입된 게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 사적(私的)연금이다. 국민연금이나 기초노령연금 같은 공적(公的)연금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2005년 만들어진 퇴직연금 제도는 그러나 10년이 되도록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퇴직연금 가입이 꾸준히 늘고 있지만 전국 160만7천여 사업장 가운데 134만7천여 사업장(전체의 84.6%)이 여전히 퇴직연금에 가입돼 있지 않다.

이러다 보니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을 반영한 우리나라의 노후소득 보장은 심각할 정도로 부족하다.

이준행 서울여대 교수는 “공적연금의 실질적인 소득대체율은 20%에 그친다”며 “사적연금도 퇴직연금이 12.5%, 개인연금이 7.5%의 소득만 대체한다”고 분석했다.

OECD 등 국제기구가 권고하는 소득대체율(사적연금 40%, 공적연금 포함 70~80%)의 약 절반에 불과한 것이다.

가입 범위, 소득대체 기능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사적연금에 가입했더라도 수익률이 저조하다.

퇴직연금 적립금을 가장 많이 운용하는 삼성생명(10조5천억원)의 원리금보장상품 수익률은 2012년 1분기 1.13%에서 올해 1분기 0.80%로 ‘제로 수익률’에 가깝다.

HMC투자증권(4조8천억원, 0.84%), 신한은행(5조원, 0.79%), 우리은행(3조9천억원, 0.78%), 국민은행(3조6천억원, 0.77%) 등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원리금을 보장하지 않는 상품에서는 아예 ‘마이너스 수익률’을 나타내는 곳도 허다하다.

LIG손해보험은 -1.05%의 수익률로 금융권 꼴찌 수준이다. 대우증권(-0.38%), 흥국생명(-0.19%), IBK연금보험(-0.17%) 등에서도 마이너스 수익이 났다.

◇범정부 TF, 수익률 높이고 안전장치 마련 추진

국민이 노후 빈곤에 무방비로 노출됐다는 점을 의식한 정부가 해결책 찾기에 나섰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금융위원회 등이 참여한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사적연금의 활성화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특히, 사업장 단위의 가입을 독려해 소득대체율을 높일 수 있는 퇴직연금의 제도 개선에 주력할 방침이다.

정부는 우선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높이도록 개별 연금을 기금처럼 풀(pool)로 만들어 기관투자 방식의 운용을 도입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현재 40%로 묶인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의 위험자산 비중을 50% 정도로 높이고 연도별 60~80%인 확정급여(DB)형 최소적립비율도 완화하는 것이다.

예금 위주로 안전성에 치우친 자산운용의 규제를 완화하고, 위험자산 투자를 늘리는 투자원칙보고서(IPS) 도입도 검토된다.

위험자산 투자를 늘릴 경우 가입자의 불안감이 클 수 있는 만큼 예금자보호제도처럼 일정 한도에서 납입액을 보장하는 심리적 안전장치를 마련할 계획이다.

가입자 확대 정책은 특히 연금의 사각지대에 놓인 저소득층, 연금 가입 기간이 짧은 ‘베이비부머’ 세대에 초점이 맞춰진다.

TF 관계자는 “이들의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어떤 인센티브를 줄 것인지, 세제 지원을 줄 것인지 검토되고 있다”고 전했다.

장기 가입을 늘리면서 일시금보다는 연금 형태의 지급을 늘리는 인센티브와 제도적 방지 장치도 논의된다. 현재는 일시금 수령 수급자 비중이 91.6%에 달한다.

TF 관계자는 “퇴직금을 연금으로 받으면 퇴직소득세(연령에 따라 3.3~5.5%) 과세를 유예해주는데, 연금화에 대한 추가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TF 논의결과를 연내에 내놓기로 했지만 국민이 원하는 수준의 해답을 도출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TF에 참여한 고위관계자는 “연금 문제는 역대정권에서도 몇번 논의된 적이 있으나 부처간 이해가 엇갈리고 제밥그릇 챙기기 경향까지 있어 쉽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며 “충분한 논의가 전제돼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稅혜택·보조금 늘린 미국식 ‘캐치업 플랜’ 절실”

전문가들은 사적연금이 획기적으로 활성화되려면 전폭적인 세제 지원이 ‘화룡점정’에 해당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대익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중산층 이상은 세제지원을 강화하고, 저소득층은 정부 보조금이나 매칭펀드로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은퇴를 앞둔 50세 이상의 노후자금 준비에 소득공제를 대폭 늘리는 미국의 ‘캐치업 플랜(Catch-up Plan)’을 모델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 연구위원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미국의 개인연금 지출 공제율이 45%이지만, 우리나라는 15% 정도”라며 “공제 수준을 훨씬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양희종 우리은행 퇴직연금부장은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혜택이 줄어든 대신 공제 대상 금액을 늘려야 퇴직연금 가입이 활성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양 부장은 “연 400만원으로 묶인 공제 한도를 늘리고, 일본처럼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의 과세 체계를 달리해 개별 공제로 바꿔주는 게 좋다”고 말했다.

세수 부족을 염려하는 정부로서는 세금을 깎아주는 데 신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금을 아끼려다 나중에 더 큰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견해가 만만치 않다.

박기출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은 “당장 세수 감소보다 20~30년 뒤 노후 준비를 못 한 채 거리에 사람들이 쏟아질 때의 비용을 더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준행 교수는 세제 혜택 확대와 더불어 연금 자산을 운용하는 금융회사의 역량도 강화가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운용사들이 정말 최선을 다해 연금 자산을 운용하는지 의구심이 든다”며 “어렵고 복잡한 연금 상품도 쉽게 설명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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