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14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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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日 사업 실패·소송, 형제들 불화 얽힌 베델… 한국행 배에 오르다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日 사업 실패·소송, 형제들 불화 얽힌 베델… 한국행 배에 오르다

    일본에서 무역 일을 하던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은 한동안 성공 가도를 달리는 듯했으나 오래지 않아 악재가 겹쳐 어려움을 겪었다. 사업체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일본 업체들의 담합·소송에 휘말리고 형제들과도 관계가 나빠져 결국 일본 사업을 포기했다. ●9개나 되는 공장 차렸다가 못 버티고 폐업 1888년 고베에 와 아버지와 이모부 밑에서 무역 일을 배운 베델은 1899년 ‘베델 브러더스’를 세워 독자 사업에 나섰다. 일본의 골동품을 영국에 내다파는 중개업에 자신감이 붙은 베델은 한발 더 나아가 일본에서 직접 물건을 만들어 영국에 수출하기로 마음먹었다. ‘베델 브러더스’가 생산하기로 한 첫 제품은 바로 러그였다. 러그는 바닥깔개나 무릎덮개 용도로 쓰는 직물제품을 말한다. 베델은 형제들과 1901년 7월 오사카 남부 사카이 지역에 소규모 러그 제조 공장 9개를 차렸다. 당시 사카이에는 일본인들이 조합 형태로 운영하는 러그 공장이 많았다. 한때 이곳은 지역 주민의 70%가 러그 생산에 매달릴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베델 브러더스’는 이런 사카이에 공장을 차린 첫 외국인 업체였다. 이들이 만든 러그는 품질도 꽤 좋았던 것 같다. 영자지
  • 日 고베 시절 베델 미공개 사진 나왔다

    日 고베 시절 베델 미공개 사진 나왔다

    1904년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해 독립운동에 기여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의 미공개 사진이 발견됐다. 26일 서울신문 창간 특별기획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취재팀은 베델과 남동생 아서 퍼시 베델(1877~1947)이 일본 고베의 스포츠클럽 ‘고베 레가타 앤드 어슬래틱’(KR&AC)에서 활동하던 당시 사진 5장을 새로 찾았다. 베델은 1888~1904년 16년간 고베에 살며 무역업에 종사했다. 이 사진들은 베델의 20대 시절 모습으로, 다카기 마사미츠(72) 고베 외국인거류지 연구위원이 2000년대 중반 KR&AC에서 영인(원본을 사진 촬영해 복제한 것)한 것이다. 베델의 남동생 아서 퍼시의 사진도 눈길을 끈다. 그간 학계에서는 그가 형(베델)을 돕고자 영국 런던에만 머물렀다고 추정해 왔다. 하지만 이번 사진을 통해 일본에서도 장기간 생활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안타깝게도 KR&AC 사진 원본은 사라졌다. 다카기 연구위원은 “최근 KR&AC에서 앨범이 통째로 유실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전에 일하던 종업원이나 관리자가 급전이 필요해 고물상이나
  •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성공과 실패 동시에 겪은 일본 생활… ‘프리메이슨’ 활동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성공과 실패 동시에 겪은 일본 생활… ‘프리메이슨’ 활동

    1888년 아버지와 이모부의 사업을 돕고자 일본으로 간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은 고베에서 16년간 살면서 성공과 실패를 모두 맛봤다. 그는 사업이 번창해 큰 돈을 벌었고 결혼도 했다. 지역 스포츠클럽 사무국장을 맡아 리더십을 발휘했다. 반면 비밀결사단체로 알려진 ‘프리메이슨’에도 가입하는 등 미스터리한 면도 보였다. 16세 소년 베델이 고베에 왔을 때는 일본이 고베항을 개방(1868년)한 지 정확히 20년이 되던 해였다. 고베는 개항 당시만 해도 사람이 거의 없던 허허벌판이었다. 하지만 바다 수심이 깊어 큰 배가 쉽게 들어오면서 외국의 자본과 기술이 빠르게 퍼졌다. 인구도 1895년 15만 3382명, 1901년 25만 9040명, 1910년 38만 7915명으로 급속히 늘었다. 20세기 초 조선의 수도 한양의 인구가 20만명 안팎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이곳이 얼마나 크고 활기찬 도시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지금도 일본에서 쓰이는 “성공한 사람은 교토에서 공부하고, 오사카에서 돈을 벌어, 고베에 산다”는 말은 이 무렵부터 생겨났다. 베델은 일본 시절 초기 이모부인 퍼시 알프레드 니콜(1848~1899)의 집(고베시 73번지)에
  • [남북경협 넘어 신동북아 경제지도] “한·중·러 철도 연결 땐 압록강·두만강 동북아 경제중심지 될 것”

    [남북경협 넘어 신동북아 경제지도] “한·중·러 철도 연결 땐 압록강·두만강 동북아 경제중심지 될 것”

    동북아시아에서 평화와 경제협력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서울신문은 지난 18일부터 23일까지 4회에 걸쳐 남북경협의 시야를 압록강과 두만강, 중국 동북 3성 그리고 러시아 연해주, 몽골, 일본까지도 아우르는 ‘동북아 경제지도’로 넓힐 것을 제안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5회에선 한·중·일·러 4개국 학자들과 함께 동북아 경제지도를 모색하는 지상대담을 싣는다. 이들은 총론에는 동의하면서도 각자 처한 위치에 따라 사뭇 다른 진단을 내놓았다. →동북아 경제지도에서 압록강·두만강 하구가 주목받고 있는데. -임강택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임 위원) 남북협력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할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압록강·두만강 하구의 중요성이 눈에 들어온다. 현재 북·중 경협의 70%가량이 신의주·단둥에서 이뤄진다. 두만강 하구는 아직까진 취약하다. 정치 바람에 취약하고 북·중·러 협력틀도 취약하다. 단둥은 열려 있는 공간인 반면 연변은 변경이다. 단둥은 돈이 많이 굴러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관광도 꽤 활발하다. 연변은 백두산에 가기 위해 잠깐 들르는 정도다. 연변을 중심으로 한 경제협력에서 관건은 현지 조선족의 마음을 어떻게 얻을 것인
  • [남북경협 넘어 신동북아 경제지도] 日, 北과 교류 재개 조건은 ‘납치문제 해결’…北·美 대화 변수로

    [남북경협 넘어 신동북아 경제지도] 日, 北과 교류 재개 조건은 ‘납치문제 해결’…北·美 대화 변수로

    “저기 아래 보이는 니가타 항구에서 바로 13살밖에 안 된 요코타 메구미가 납치됐어요.” 지난 4일 일본 니가타현 니가타시 반다이지마 빌딩 13층 일본 동북아경제연구소(ERINA) 사무실 창문에서 바라본 니가타항은 을씨년스러웠다. 마침 한반도를 비껴간 7호 태풍 쁘라삐룬의 영향 탓에 비바람이 몰아쳤기 때문이었을까. ERINA 사무실에서 만난 북한전문가 미무라 미쓰히로 선임 연구위원은 첫 인사를 나누자마자 항구를 가리키며 일본 납치 문제의 상징인 메구미 사건을 대뜸 거론했다. 니가타현은 해방 이후 북한과의 교류가 가장 활발했지만, 납치 문제가 얽혀 일본인과 재일조선인의 복잡미묘한 감정이 뒤섞인 지역이다. 만경봉 92호는 해방 이후 일본 니가타현과 북한 강원도 원산을 왕래하면서 재일조선인들의 북한 송금과 냉장고, 세탁기, 자전거 등 중고 물품 전달을 하는 최대 창구였다. 하지만 2006년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일본이 만경봉 92호의 입항을 금지했다. 북한과 일본의 경제협력도 점차 끊어졌다. 만경봉 92호는 북한이 일본인 납치 목적으로 활용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니가타에 사는 일본인들의 납치 문제에 대한 공포감과 반감은 상상 외로 컸다. 미무라 연구위원은 “자
  • [남북경협 넘어 신동북아 경제지도] 민간 東亞무역硏, 멈춰선 북·일 교류 재추진

    [남북경협 넘어 신동북아 경제지도] 민간 東亞무역硏, 멈춰선 북·일 교류 재추진

    1973년 석유파동후 민간 교류 자취 감춰 2009년 대북 수출금지…현재까지 ‘스톱’ 북한과 일본의 교류는 1956년부터 민간기업 주도로 시작됐다. 일본 동아시아무역연구회의 전신인 ‘일조무역회’가 그해 3월에 설립되면서 민간 차원의 북·일 교류 기반을 닦았다. 하지만 1973년 1차 석유파동 이후 북한의 채무변제 능력이 떨어지면서 서서히 북·일 민간교류도 자취를 감추게 된다. 지난 3일 일본 도쿄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만난 일본 동아시아무역연구회 와카바야시 히로유키 이사장은 “지금까지 북한과 일본의 경제교류를 지원한 단체는 동아시아무역연구회가 유일하다”면서 “앞으로 북한과 일본 간의 경제교류가 재개될 것에 대비해 15개 회원사를 중심으로 교류협력 추진작업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동아시아무역연구회에 따르면, 1956년 북한의 무연탄이 중국 다롄을 경유해 일본에 수출된 간접무역이 북·일 민간 교류의 시초였다. 이후 일본은 시멘트와 플랜트·봉제가공 기계 등을 수출했고 북한은 일본에 무연탄을 시작으로 철광석, 아연, 마그네샤크링커(내화벽돌의 원료) 등을 수출하는 등 양국 간 활발한 무역이 전개됐다. 1965년 5월에는 평양에서 ‘일본상품전시회’가 열렸고, 19
  • [남북경협 넘어 신동북아 경제지도] “한반도 안보 급변… 한중일 협력 모멘텀 확보”

    [남북경협 넘어 신동북아 경제지도] “한반도 안보 급변… 한중일 협력 모멘텀 확보”

    개성공단 활성화·北 과학기술 활용을 국가·민간 상호연계 채널 구축 필요 2011년 9월 서울에 설립된 한중일3국협력사무국(TCS)은 지난 5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 후속 작업으로 최근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종헌(62) 3국협력사무국 사무총장은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한반도 안보환경의 급변으로 3국 협력이 긍정적인 모멘텀을 확보했다”며 3국협력사무국의 역할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 사무총장은 1988년 외시 22회로 외교부에 입성해 조약과장 등을 지냈다. 다음은 일문일답. →동북아 경제협력에서 3국 협력사무국의 역할은. -지난 70년간 냉전체제로 인해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이 소모적인 전략적 경쟁에 치중해 왔다. 이제는 국민들의 삶을 개선시키는 지역협력으로 나가야 된다. 3국의 정부 메커니즘을 지원해서 냉전 체제 종식이라는 큰 방향으로 갈 수 있는 협력에 주력하겠다. →동북아 경제협력에 대한 향후 정세와 전망은. -현재와 같은 동북아 안보 환경에서는 한·중·일 협력체제 같은 소(小)다자주의 협력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양자주의와 다자주의는 제동이 걸리고 있다. 한국 정부
  • 숫자로 보는 북한 경제

    숫자로 보는 북한 경제

    남한보다 높은 경제성장률 인구수는 절반인 2489만명 자녀수 1.89명 저출산 심각 남한의 국민총소득(GNI)은 2016년 기준 북한의 약 45배다. 비율로 보면 북한은 남한의 약 2.2%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북한의 국민총소득이 남한의 1.5~3배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난 60년간 북한 경제는 내리막길을, 남한은 상승가도를 달렸다. 2017 북한의 주요 통계지표를 보면 2016년 기준 북한의 GNI는 36조원, 남한은 1646조원으로 45.1배 차이가 났다. 1인당 GNI는 북한이 146만원, 남한이 3212만원으로 남한이 북한보다 22배 높았다. 국민총소득은 일정 기간 한 나라의 국민이 생산활동에 참여한 대가로 받은 소득의 합계를 말한다. 이에 반해 같은 해 경제성장률은 북한이 3.9%로 남한(2.8%)보다 더 높았다. 1999년 이래 17년 만에 최고치였는데, 전년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1.1%로 저조한 데 따른 기저효과도, ‘장마당’으로 대표되는 시장경제의 확산도 이유로 꼽힌다. 무역총액은 2016년 기준 북한이 65억 달러로 남한(9016억 달러)의 138분의1 수준으로 나타났다. 북한의 수출액은 28억 달러로 남한(4954억 달러)
  • 아빠는 고속철 타고 서울~개성 출퇴근…아들 軍복무는 딱 6개월

    아빠는 고속철 타고 서울~개성 출퇴근…아들 軍복무는 딱 6개월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선언’을 발표하면서 분단 73년째인 남북 관계는 획기적인 전기를 맞았다. 문 대통령이 “연내 종전선언이 목표”라고 밝히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간 평화협정 체결에 대한 기대감도 나온다. 이런 훈풍이 20년간 계속되면 한반도는 어떻게 변할까. 남과 북이 하나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단언하긴 어렵지만, 휴전선을 허물고 자유롭게 오가며 평화롭게 공존한다고 상상할 수 있지는 않을까. 20년 후인 2038년 한반도의 모습을 각종 보고서와 북한 전문가 인터뷰로 재구성했다. 삼성전자 입사 3년차 김정훈(34)씨는 서울에서 개성으로 출퇴근한다. 삼성전자는 2034년 개성공단 가동 30주년을 맞아 이곳에 국내 10번째 사업장을 설치했다. 개성은 서울과 가깝고 수출 창구인 인천과도 인접해 국내 주요 대기업 대다수가 생산기지를 세웠다. 서울에서 개성까지는 약 50㎞의 만만치 않은 거리지만 웬만한 수도권과 출퇴근 시간이 비슷하다. 시속 350㎞의 고속철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개성, 평양, 신의주로 달리는 고속열차는 2030년부터 운행됐다. 2018년 판문점 선언을 계기로 남과 북이 손잡고 대대적인 투자
  • [남북경협 넘어 신동북아 경제지도] 탄력받는 남·북·러 가스관 연결… 극동개발기금 “인프라 투자 의향”

    [남북경협 넘어 신동북아 경제지도] 탄력받는 남·북·러 가스관 연결… 극동개발기금 “인프라 투자 의향”

    국경이 맞닿아 있는 러시아와 한반도를 파이프라인으로 잇는 ‘남·북·러 가스관 연결’ 사업은 북방 경제협력의 청사진이다. 러시아의 풍부한 천연가스를 북한을 거쳐 가져오면 우리나라는 보다 저렴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천연가스를 공급받을 수 있다. 단순히 경제적 가치를 넘어서 남·북·러 3국에 미치는 정치적 파급효과도 크다. 한·러 양국은 25년 전인 1993년부터 관련 논의를 시작했으나 그동안 북한의 불확실성 때문에 번번이 무산됐다. 최근 들어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와 맞물려 가스관 연결 사업이 다시 탄력을 받고 있다. 서울신문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현지 금융당국 관계자와 기업가 모두 가스관 연결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러시아 국영가스회사인 가즈프롬 측은 지난 6일 서울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남·북·러 가스관 연결 사업은 천연가스 공급원의 다양화로 소비자에게 공급되는 가스의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가즈프롬 측은 “(한·러 간) 일련의 회담에서 양측은 북한 영토를 경유해 대한민국에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며 “현재 실무자들이 프로젝트의 기술적 측면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비용이다. 가스관
  • [남북경협 넘어 신동북아 경제지도] 극동개발 땐 부산~블라디보스토크 ‘한반도 新경제’ 퍼즐 완성

    [남북경협 넘어 신동북아 경제지도] 극동개발 땐 부산~블라디보스토크 ‘한반도 新경제’ 퍼즐 완성

    지난 4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서 남쪽 방향으로 자동차로 3시간여 정도 달리자 작은 항구도시가 모습을 나타냈다. 한국과 중국, 러시아를 잇는 ‘신(新)북방 실크로드’의 거점, 자루비노 항구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안개가 자욱한 궂은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선박 하역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곳에서 자동차로 1시간여 정도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러시아와 중국, 북한 3국이 맞닿은 국경 지역이 나온다. 중국의 국경도시 훈춘까지는 63㎞에 불과하다. 한때 러시아에 중국 관광 붐이 일었을 때에는 자루비노를 거쳐 훈춘으로 향하는 도로에 버스가 하루에 몇 대씩 다녔다고 한다. 자루비노항은 잠재력이 큰 항구다. 무엇보다 중국, 북한, 한국, 일본 등과 근접하다는 점에서 위치가 탁월하다. 러시아 정부는 자루비노항을 동북아시아 물류 거점으로 육성하기 위해 개발 및 현대화에 힘을 쏟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남·북 관계 개선 시 한반도에서 유렵 대륙으로 통하는 관문이 될 수 있다. 인근 평야를 따라 길게 뻗은 철도 위로는 간간이 중국 훈춘으로 가는 석탄이나 휘발유를 실은 화물 열차가 다녔다. 북한의 나진역, 두만강역을 거쳐 러시아 하산으로 연결되는 철도도 이 철도와 합류한
  • [남북경협 넘어 신동북아 경제지도] 두만강 따라 4개국 경협 北 다시 정규멤버 됐으면

    [남북경협 넘어 신동북아 경제지도] 두만강 따라 4개국 경협 北 다시 정규멤버 됐으면

    “경제 협력 구조를 만들 때부터 북한은 광역두만강개발계획(GTI·Greater Tumen Initiative) 구상에 포함돼 있다. 북한의 재가입과 일본의 신규 가입을 언제든 환영한다.” 지난달 27일 중국 베이징 GTI 사무실에서 서울신문을 만난 투글두르 사무국장은 북한의 GTI 가입이 꼭 필요하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몽골 출신인 투글두르 국장은 지난해 2월부터 GTI를 이끌고 있다. 그는 “GTI는 몇 년 전부터 북한이 다시 정규 멤버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초청 의사를 밝혀 왔다. 지난 22일 열린 총회에서 북한의 재가입을 요청하는 ‘울란바토르 선언’을 채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고 밝혔다. ●한·중·러·몽골 경제통합 추진… 北·日 참여를 GTI는 두만강 유역 주변국(한국·중국·러시아·몽골) 간 경제협력을 도모하는 다자간 협력체다. 1992년 유엔개발개획(UNDP)의 두만강유역개발계획(TRADP)에서 출발해 2005년 지리적 범위를 넓혔다. 투글두르 국장은 “몽골 동부 지역에서 출발해 중국 동북, 러시아 극동 지방, 한국의 부산까지 모두 개발 범위에 포함된다”면서 “특히 국경을 따라 흐르는 두만강은 경제통합의 요람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돌연 뛰어든 日무역…아버지의 모험이  한국 가는 운명의 시작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돌연 뛰어든 日무역…아버지의 모험이 한국 가는 운명의 시작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은 16살이던 1888년 일본으로 건너가 사업을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 토머스 행콕 베델(1849~1912)이 돌연 극동 무역업에 뛰어들면서 세 아들에게도 일을 맡기는데, 이는 나중에 베델이 한국을 찾아오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토머스 행콕은 15년 넘게 브리스톨의 맥주회사에서 사무직원으로 일하다가 1886년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일본 무역 일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나이 37세였다. 예나 지금이나 평범한 샐러리맨이 불혹(不惑)의 나이에 사업을 하겠다고 결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가 이를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동업자 퍼시 알프레드 니콜(1848~1899)의 지원이 컸다. 19세기까지 ‘대영제국’은 세계의 바다를 누비며 글로벌 무역 패권을 장악한 중심 국가였지만 상대적으로 일본과의 무역은 활발하지 않았다. 유럽인들이 한국과 일본을 지금도 ‘극동’(Far East)이라고 부르듯 당시 영국인들에게 일본은 ‘세상의 끝’이었다. 당시 니콜은 이미 일본에서 골동품 사업으로 상당한 부를 모은 때였다. 그는 영국과 거리가 멀어 경쟁자가 많지 않은 일본과의 무역을 ‘블루오션’(신성장 사업)으로 보고
  • [4차 산업혁명 현장을 가다] “中 4차 산업혁명으로 7~8년 안에 G1될 것”

    [4차 산업혁명 현장을 가다] “中 4차 산업혁명으로 7~8년 안에 G1될 것”

    “중국의 일반적인 산업은 아직 3차 산업혁명도 제대로 안 되고 있어요. 하지만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라 불리는 중국의 3대 인터넷 기업이 하는 4차 산업혁명 규모는 어마어마합니다.” 한국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기관으로 창업기업의 중국 진출을 돕는 한국혁신센터(KIC)의 고영화 센터장은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중국이 7~8년 안에 주요 2개국(G2)을 넘어 G1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지도부가 계획한 대로 국가 전체가 움직이는데 현재 중국이 첨단 제조업 육성책 ‘중국제조 2025’를 통해 빠르게 혁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고 센터장은 지난해 말 중국 정부가 검색으로 성장한 바이두에는 자율주행, 중국 최대 쇼핑 사이트 타오바오를 만든 알리바바에는 스마트도시, 국민 메신저 위챗을 운영하는 텐센트에는 인공지능(AI)이란 4차 산업혁명 과제를 각각 부여했다고 설명했다. BAT는 미국의 인터넷기업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과 각각 대항하는 성격의 ‘정보기술(IT) 공룡’을 합해서 붙인 이름이다. BAT가 그동안 투자하거나 인수한 회사들이 각각 100개가 넘는다. 특히 AI 기업으로 전환한 알리바바의 시가총액은 한국의 한 해 예산을 추월했다.
  • [4차 산업혁명 현장을 가다] ‘AI 공유자전거’로 교통체증·온실가스 줄인다

    [4차 산업혁명 현장을 가다] ‘AI 공유자전거’로 교통체증·온실가스 줄인다

    인공지능(AI) 기술로 운영하는 세계 최대의 공유자전거 업체 오포(ofo)의 노란색 물결이 22개국 250개 도시의 교통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공유자전거가 도입된 곳 가운데 95%의 도시에서 교통체증이 감소했다는 분석치도 나온다. 2014년 설립된 오포의 누적 이용 횟수는 60억회로, 이는 중국 베이징 면적의 두 배 크기의 숲이 324만t의 이산화탄소를 감축한 것과 같은 효과로 평가된다. 오포는 자전거 정비와 배치에 AI 기술을 활용한다. 또 위성항법장치(GPS)가 달린 오포의 자전거가 수집하는 정보를 통해 도시의 교통 효율을 높이고 있다. 노란색 자전거 오포가 닦은 4차 산업혁명의 길을 달려보았다. 오포는 중국판 실리콘밸리라고 불리는 베이징 중관춘(中關村) 한복판에 있다. 전자 제품 상가에서 시작한 중관춘은 현재 중국 창업기업의 요람이다. 거리에 들어선 창업카페에서 누구나 창업 관련 조언과 투자금을 얻을 수 있다. 오포의 10층 사무실에는 중국 최고의 두뇌집단인 베이징대와 칭화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오포를 만든 5명의 공동 창업자는 베이징대 졸업생들이다. 중관춘은 중국 정부의 지원과 우수한 인력이 결합해 4차 산업혁명의 전진기지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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