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도둑이 할아버지 기억 빼앗아”

“잔인한 도둑이 할아버지 기억 빼앗아”

최병규 기자
입력 2020-05-05 22:24
수정 2020-05-06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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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세계 1위 고진영의 슬픈 가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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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낳은 세계여자골프 랭킹 1위 고진영이 5일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글을 올린 LPGA 홈페이지 메인 화면 모습. 지난해 11월 22일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의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린 LPGA 투어 시상식에서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소감을 밝히며 웃고 있는 사진과 함께 글이 올라와 있다. LPGA 투어 홈페이지
한국이 낳은 세계여자골프 랭킹 1위 고진영이 5일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글을 올린 LPGA 홈페이지 메인 화면 모습. 지난해 11월 22일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의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린 LPGA 투어 시상식에서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소감을 밝히며 웃고 있는 사진과 함께 글이 올라와 있다.
LPGA 투어 홈페이지
“2년 전 별세한 할아버지 정말 그리워”
트로피보다 ‘인간 고진영’ 봐주길 바라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고진영(25)이 어린이날인 5일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홈페이지에 자신의 가족사를 공개했다.

고진영은 ‘내 할아버지의 딸’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2년 전 알츠하이머병과 싸우다가 84세에 별세한 할아버지 고익주씨를 그리워했다. 할아버지는 고진영이 2018년 4월 롯데챔피언십에 출전하기 위해 하와이에 머물 때 세상을 떠났다. 당시 고진영은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해 할아버지 장례에 참석한 뒤, 다음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LPGA 투어 휴젤 LA오픈에 출전해 준우승했다.

고진영은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의 기억이라도 더 지키기 위해 힘겹게 싸우는 모습을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채 옆에서 지켜보는 일은 고통스럽다. 언젠가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이 힘겨운 시간을 마주하는 것은 더 그렇다”고 아픈 마음을 토로했다. 이어 자신의 이름을 지어 준 할아버지의 투병 당시를 떠올리면서 “잔인한 도둑이 매일매일 조금씩 할아버지의 기억을 빼앗는 일은 슬프고 지켜보기 힘들었지만, 병마에 맞서 싸우는 할아버지의 용기와 위엄을 보며 오히려 큰 영감을 받기도 했다”고 적었다.

또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신인 시즌이었던 2014년, 할아버지는 이미 더이상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면서도 “기적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일은, 내가 TV에 나타났을 때 할아버지께서 나를 기억하셨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나는 이후 KLPGA 투어에서 10번이나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고 했다.

고진영은 “모든 팬들이 스코어보드의 숫자나 진열장의 트로피보다 ‘인간 고진영’을 더 많이 봐 주길 바란다”며 “나는 누군가의 친구이자 딸이며 손녀, 그리고 골퍼다. 모두가 나를 그렇게 봐 준다면 내 인생과 선수로서의 삶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고 했다.

이어 “내게 LPGA 투어는 이제 제2의 고향이 됐다. 선수, 캐디, 스태프들은 마치 한 가족 같다”면서 “하지만 신인상, 우승보다 중요한 점은 남은 인생 동안 내 곁에서 함께할 사람들과의 관계를 발전시킨 것”이라고 했다.

앞서 고진영은 지난해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첫 메이저 우승했을 때에도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해서 너무 행복하다. 하나님과 부모님은 물론 지난해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께 감사드린다. 살아 계신다면 기뻐하시면서 눈물을 흘렸을 텐데 정말이지 그립다”며 할아버지를 언급한 바 있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2020-05-0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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