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남 강경노선 공식화한 北
北, 통신선 차단을 ‘첫 단계’라고 언급누적된 불신·불만… 삐라 계기로 터진 듯
김여정 담화대로 단계적 강경조치 전망
개성공단 완전 폐쇄·군사도발 우려 커져
“北, 정부 대응 따라 뒤집을 가능성도”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과 김영철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배신자들과 쓰레기들이 저지른 죗값을 정확히 계산하기 위한 단계별 대적 사업 계획들을 심의했다”며 통신선 차단을 ‘첫 단계’로 지시했다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 보도는 북한 주민이 보는 노동신문에도 실렸다. 대북전단 살포를 비난하고 대남 강경책을 시사한 김 제1부부장과 당 통일전선부 대변인의 담화를 노동신문에 게재한 데 이어 탈북민과 대북전단을 비난하는 군중집회를 잇달아 개최하면서 대외적으로는 물론 북한 주민에게도 현재 남북 관계가 적대적 대결 구도임을 분명히 했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안보전략연구실장은 “미리 준비해 작심하고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이처럼 신속하고 전면적인 남측과의 적대 선언은 대북전단 살포 문제 이면에 누적된 한국 정부에 대한 불만과 불신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한국 정부가 비핵화 협상에서 미국을 설득하지 못했고 남북 협력을 독자적으로 추진하지도 못한 것은 물론 대북전단 살포조차 막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남한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는 것이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금강산·개성공단도 재개되지 않고, 한미연합훈련도 완전히 중단되지 않은 상황에서 북측은 남측으로부터 얻은 게 별로 없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한국 정부의 대응을 보며 대남 강경 조치를 이미 정한 액션플랜에 따라 단계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김 제1부부장이 지난 4일 담화에서 언급했던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철수 요구, 지난해 10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명령한 금강산 관광지구의 남측 시설 철거, 개성공단 남측 기업의 자산 몰수 등이 순차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아울러 북한이 9·19 군사합의 무효화를 선언하고 대북전단 추가 살포 시 고사총을 발사하거나 남측에 대한 국지 도발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김동엽 경남대 교수는 “군사합의에서 설정한 완충구역 중 군사분계선이 명확하지 않은 서해 해상에서 긴장을 조성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반면 신범철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안보전략센터장은 “북한이 곧바로 군사도발에 나서면 가뜩이나 미중 갈등으로 여력이 없는 중국으로부터 지지를 얻지 못할 것”이라며 “중국의 지원이 필요한 북한으로서도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를 규제하더라도 북한은 한미연합훈련 중단 등 또 다른 조건을 내걸며 정부를 압박, 대남 강경 노선을 장기간 고수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대북전단 살포 외에도 한미연합훈련이나 미국산 무기 도입 등을 문제 삼으며 압박의 강도를 높여 나갈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김 위원장이 직접 나서지 않았기에 남북 정상 간 우의 차원에서 뒤집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며 “한국 정부의 대응에 따라 여지는 남겨 둔 것”이라고 말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2020-06-1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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