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2년 국정과제 평가<1>] 경제·민생
공정경제 11개항목 변질·진행없음 ‘절반’시행령만 바꾸면 되는 총수사익 편취 손놔
가맹점주 보호 단체 신고제도 국회 낮잠
가계부채 총량 축소 약속 실효성 떨어져
서민 주거비·통신비 부담 완화도 ‘헛구호’
●경제·민생 관련 법안 상당수 ‘계획만’
경제가 나빠지면서 재벌 개혁 칼날은 점점 무뎌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태원 SK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투자 확대를 요청했다. 경기 부양을 위해 정부가 대기업에 세금 감면과 규제 완화 등 당근을 주면서 공정경제 확립을 위한 주요 공약들은 추진력을 잃었다.
서울신문과 참여연대가 점검한 39개 경제·민생 국정과제 세부 항목 가운데 ‘이행완료’ 항목은 5개(12.8%)였다. 21개(53.9%) 항목이 ‘이행 중’으로 분류됐다. 이행했거나 이행하려고 노력 중인 비율이 66.7%인 셈이다. 수치로만 보면 다른 분야에 비해 높다. 하지만 이행 중인 항목을 뜯어보면 상당수는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잠자고 있거나 정부가 계획만 발표한 상태다. 당초 계획과 달라진 ‘축소·변질 이행’은 7개(17.9%), 아예 추진조차 하지 않은 ‘진행 없음’은 6개(15.4%)였다.
특히 공정경제 분야가 심각했다. 39개 항목 중 공정경제 관련 11개 항목에서는 ‘축소·변질’(27.3%), ‘진행 없음’(27.3%) 평가를 받은 항목이 절반을 넘었다. 재벌 개혁 후퇴에 따른 결과다. 정부는 재벌 총수일가의 전횡을 막기 위해 지난해까지 다중대표소송제와 전자투표제를 도입하고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보수 야당과 재계의 저항에 부딪혔다. 평가단은 “정권 초기에 드라이브를 걸었어야 할 개혁 입법을 미룬 결과”라고 지적했다. 집권 3년차인 올해도 법 개정에 실패하면 재벌 개혁은 사실상 물 건너갈 것으로 평가됐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일감 몰아주기 등 사익편취 규제 대상 상장사 기준을 총수일가 지분율 30% 이상에서 20%로 낮추고, 총수일가 지분율 50% 이상 자회사도 규제하기로 한 것은 적절한 조치로 평가됐다. 그러나 이것도 야당의 반대로 법 개정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평가단은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 강화는 정부가 시행령 개정으로도 할 수 있는데 시도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을’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며 내세운 대통령 직속 ‘을지로위원회’ 설치 공약도 별 성과가 없다. 지난해 11월부터 공정위 주도로 6개 관련 부처가 모여 ‘공정경제 전략회의’를 열고 있지만 회의체 이상의 역할은 못 했다.
편의점과 치킨집 등의 가맹점주를 보호하기 위해 가맹점사업자단체 신고제를 도입하기로 했는데, 2016년 7월 민주당 전해철 의원이 발의한 가맹사업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논의되지 않고 있다. 같은 당 이학영 의원이 대리점 사업자들에게 단체구성권을 주는 내용으로 발의한 대리점법 개정안 역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원 공약도 후퇴했거나 보완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지난해 5월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됐지만, 동반성장위원회가 기존에 지정한 73개 업종으로 제한됐다. 이 업종에 진출하는 대기업에 매기는 강제금은 원안에서 정했던 매출액의 최대 30%에서 5%로 쪼그라들었다. 골목상권 보호를 위한 복합쇼핑몰 월 2회 휴무 의무화는 소비자 피해 논리에 막혔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복합쇼핑몰 영업 제한은 대형마트 규제보다 이해관계자가 많아 이행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임대료 인상률 상한을 9%에서 5%로 내리는 등 지난해와 올해 상가임대차보호법 시행령을 두 차례 개정해 임차인을 보호한 것은 좋은 점수를 받았다. 법 개정으로 계약갱신요구권 행사 기간도 5년에서 10년으로 늘었다.
●공공임대주택도 임대료 높아 포기 속출
서민 주거비와 통신비 부담 완화 방안은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토교통부가 2017년 12월 서민주거 안정과 주거복지 확대를 위해 공공임대주택과 공공분양주택 등을 100만호 공급하겠다는 주거복지로드맵을 발표했지만, 28만호의 건설형 공공임대주택 중 임대료가 높은 행복주택(19만 5000호)이 67%를 차지했다. 임대료 부담에 입주를 포기하는 저소득층이 많다. 평가단은 “공공임대주택 공급보다는 임대료 지원에 불과한 전세임대만 확대했다”면서 “10년 분양전환주택 7만호를 장기공공임대주택으로 전환하겠다는 정부 발표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통신비와 관련해 평가단은 “정부가 5세대(5G) 이동통신 상용화와 5G용 단말기 출시에만 혈안이 돼 5G 고가 단말기에 대한 대책이 없다”고 꼬집었다.
소득주도성장을 뒷받침한다는 ‘가계부채 위험 해소’ 공약 6개 중에서 제대로 이행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정부가 2017년 대부업법과 이자제한법에서 정하는 최고금리를 일원화하고 단계적으로 20%로 인하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법안들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지난해 2월 최고금리를 24%로 내렸지만, 미국(8~18%)과 일본(20%) 등 선진국에 비하면 여전히 높다는 평가다.
가계부채 총량을 줄이겠다는 약속도 실효성이 떨어졌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가계부채 연착륙을 유도하려고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강화하고 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도입했지만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뒤 뒷북을 친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2019-04-29 3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