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종탑 안 깊숙이 모신 사리, 佛心 지키는 열두 동물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종탑 안 깊숙이 모신 사리, 佛心 지키는 열두 동물

서동철 기자
서동철 기자
입력 2016-10-14 17:40
수정 2016-10-1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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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태화사터 십이지상 사리탑

울산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국제도시의 면모를 갖고 있다. 삼국시대의 울산이 멀리는 로마제국과 이어진 국제 교류의 전진기지였다면 20세기 이후 울산은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의 대표적 생산 및 수출입 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처용 설화가 신라시대 국제 교류의 현장으로 울산의 과거를 상징한다면 오늘날 태화강 어귀 울산만에 가득 떠 있는 유조선이며 자동차 수출용 로로선은 나라 경제에 미치는 이 도시의 강력한 영향력을 말없이 보여 준다.

보물 제441호 울산 태화사터 십이지상 사리탑. 울산박물관 제공
보물 제441호 울산 태화사터 십이지상 사리탑.
울산박물관 제공
반구대 암각화로도 유명한 울산이다. 태화강 상류의 서쪽 기슭 암벽에 새겨진 암각화가 사연댐 건설로 생긴 인공호수의 수위가 높아질 때마다 물에 잠기는 바람에 보존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고래잡이하는 어부와 배, 호랑이, 사슴, 멧돼지, 곰 등 각종 동물의 모습이 담긴 암각화는 선사시대에도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렇듯 남다른 성격을 가진 도시인 만큼 그 역사를 담은 박물관은 당연히 다른 도시의 그것과 달라야 한다. 2011년 개관한 울산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울산의 역사를 아우르는 종합적 도시역사박물관’을 표방하고 있다. 박물관 2층의 상설 전시실을 선사시대 이후 역사관과 20세기 이후 산업사관으로 나누어 놓는 것도 이런 콘셉트에 충실한 결과일 것이다.

오늘 소개하는 울산 태화사터 십이지상 사리탑도 이곳 역사관에서 만날 수 있다. 태화사터에 묻혀 있던 것을 1962년 발굴해 부산의 옛 경남도청 마당으로 옮겼다. 이후 울산 학성공원으로 돌아온 사리탑은 울산박물관 개관과 함께 지금의 자리에서 안식을 찾았다. 종 모양 몸돌의 윗부분에 사리를 모셨을 감실(龕室)을 깊게 파고, 그 아래로 십이지신상을 빙 둘러 돋을새김했다.

이 사리탑이 중요한 이유는 작고한 미술사학자 황수영 선생의 말씀을 빌려 봐도 좋겠다. 그는 1962년 현장을 조사하고 그 결과를 국립중앙박물관이 내는 ‘미술자료’에 실었다.

●“능묘에 조각한 십이지신상… 우리나라에만 있어”

‘신라를 비롯한 능묘에 십이지신상을 조각한 것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 이 같은 수법은 비단 능묘뿐 아니라 절의 탑, 석등, 비석의 귀부 등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올해 연대가 매우 올라가는 석종형 부도에서 초유의 새로운 사례가 출현했다.’

태화사터의 정확한 위치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황수영 선생이 ‘태화루터’라고 했던 곳에는 2014년 태화루가 복원됐다. 태화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경치 좋은 곳이다. 그러고 보면 울산의 젖줄이라고 할 수 있는 태화강이나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영남 3루(樓)’의 하나로 꼽히는 태화루는 이름에서부터 태화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진다.

실제로 태화사는 신라를 대표하는 사찰의 하나였던 것 같다. ‘삼국유사’는 7세기 자장이 당나라 오대산에서 문수보살로부터 받은 진신사리를 황룡사 구층탑과 통도사 계단, 태화사 탑에 나누어 봉안했다고 적었다. 또 자장이 오대산 태화지(太和池)를 지날 때 신령스러운 사람이 나타나 호국(護國)을 위해 황룡사에 9층탑을 세우라 하고, 자신을 위해서는 경주 남쪽에 절을 지어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태화’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가 가볍지 않음을 짐작하게 한다.

●고승 사리 봉안처 vs 진신사리 봉안탑… 시각 엇갈려

사리탑은 당초 9세기 석종형(石鐘形) 부도의 출발점으로 인식됐지만 그보다 이른 시기의 불탑이라는 주장이 잇따라 제기됐다. 선종 고승의 사리 봉안처라는 시각과 자장이 가져온 진신사리를 봉안한 탑이라는 시각이 엇갈리는 셈이다. 1966년 보물로 지정될 당시 ‘태화사지 십이지상 부도’였던 공식 명칭이 2010년 ‘울산 태화사지 십이지상 사리탑’으로 바뀐 것도 ‘부도’로 확정짓기엔 무리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사리탑이 이른바 석종형 부도와 매우 닮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울산에는 부도와 구별할 수 없는 모습의 불탑이 더 있다. 문수산 기슭의 망해사 쌍탑이다. 물론 망해사 쌍탑 역시 아직 불탑이라고 완전히 공인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지역에는 불탑과 부도의 모습을 차별화하지 않는 전통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불탑이든, 부도이든 일종의 무덤이라는 성격은 다르지 않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사리탑은 통도사 금강계단처럼 계단의 상부 구조일 가능성도 있다.

옛날 울산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의탁한 생명수라고도 할 수 있는 하천에 태화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태화강이라는 이름이 태화사에서 비롯됐다면 이 절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졌다는 상징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사리탑이 바로 그 불탑이라면 울산의 역사는 이 사리탑을 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니 울산에 간다면 울산박물관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dcsuh@seoul.co.kr
2016-10-15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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