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4] 일제가 네동강 낸 사명대사비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4] 일제가 네동강 낸 사명대사비

입력 2015-08-13 11:29
수정 2015-08-2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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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승군대장 사명대사 유정(1544∼1610)은 합천 해인사 홍제암에서 입적(入寂)했다. 대사를 기리는 ‘자통홍제존자 사명대사 석장비(위 사진)’는 홍제앞 바로 옆 부도밭에, 그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는 종 모양의 소박한 부도(아래 사진)는 뒷동산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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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 4년(1612) 세워진 석장비는 높이 3.15m의 당당한 모습이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비석 한가운데가 열 십(十)자 모양으로 쪼개진 흔적이 보인다. 1943년 합천경찰서장이었던 일본인 다케우라(竹浦)가 네동강내 땅속에 파묻었기 때문이다.

석장비가 중요한 것은 사명대사의 일생을 어떤 기록보다 소상히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세상에 나온 사명대사 전기의 대부분은 이 비문에 나타난 삶의 궤적을 뼈대로 약간의 문학적 상상력을 보탠 것에 지나지 않는다. 비문을 지은 교산 허균(1569∼1618)은 한글 소설의 본격적인 출발점인 ‘홍길동전’을 쓴 바로 그 사람이다. 교산은 비문에서 ‘나는 비록 유가(儒家)에 속하는 무리이지만, 서로 형님 아우 하는 사이로 누구보다 스님을 깊이 알고 있다.’고 사명대사와의 인연을 소개했다.

그런데 비문에는 뜻밖의 시선도 드러난다. ‘대사가 중생으로 하여금 혼돈의 세계인 차안(此岸)에서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彼岸)으로 건네주는 일을 등한히 하고, 구구하게 나라를 위하는 일에만 급급하였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불교계 내부의 평가가 이런 지경이었으니 살생을 금하는 불법의 수호자로 국난을 맞아 병장기를 잡아야 했던 사명대사의 고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었을 것 같다.

다케우라가 석장비를 눈엣가시처럼 여긴 것은 당연히 사명대사가 의승군을 이끌고 혁혁한 전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나아가 비석에 새겨진 사명대사와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대화 내용은 일본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조선에 보배가 있느냐.‘는 가토의 물음에 사명대사가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당신의 머리를 가장 귀한 보물로 알고 모두 노리고 있다.’고 일갈했다는 대목이 특히 그렇다.

해방 이후인 1947년 홍제암에는 새로운 사명대사비가 세워졌는데, 옛 비문의 뒷편에 ‘명정 40년’으로 유명한 시인 수주 변영로가 새로운 비문을 지어 새겼다. 깨진 석장비는 1958년이 되어서야 본래의 자리에 복원되었다. 영원히 아물 수 없는 상처가 남았지만, 이 상처가 없었다면 오늘날 느끼는 감동은 오히려 덜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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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사명대사 석장비말고도 1945년에는 남원의 황산대첩비를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훗날 조선 태조가 되는 이성계가 고려 말 도순찰사 시절 오늘날에는 운봉으로 불리는 황산에서 왜구를 섬멸한 사실을 기록한 승전비다. 황산대첩비는 1957년 다시 세워 오늘에 이른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의 승전을 기념해 여수에 세워졌던 통제이공 수군대첩비는 1942년 사라졌는데, 해방 이후 경복궁 근정전 앞뜰에서 발견됐다. 이 역시 광복 이후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일본인 사이에서도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만큼 차마 파괴하지는 꺼림직했는지도 모르겠다.

글 서동철 수석논설위원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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