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시다 아닌 순애”…영화와 전시로 직조한 70년대 여공의 삶

“내 이름은 시다 아닌 순애”…영화와 전시로 직조한 70년대 여공의 삶

김정화 기자
입력 2022-02-15 15:04
수정 2022-02-20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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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여성노동자 돌아보는 영화·전시
다큐 ‘미싱…’, PKM 갤러리 홍영인 개인전

다큐멘터리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영화사 진진 제공
다큐멘터리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영화사 진진 제공
“공장에서 나는 늘 ‘7번 시다’, 아니면 ‘1번 오야(우두머리) 미싱사’로 불렸어요. 그런데 노동교실에 가서 신순애란 이름을 처음으로 쓴 거예요. 밥보다 노동교실이 더 좋았어요.”

지난달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감독 이혁래·김정영)은 전태일 이후의 1970년대, 평화시장 청계피복노동조합에서 일한 여공들의 이야기다. 누적 관객수는 1만명도 채 안 되지만, 봉준호·박찬욱 감독이 최고의 영화로 꼽는 등 호평이 이어지며 조용한 흥행을 이어 가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영화사 진진 제공
다큐멘터리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영화사 진진 제공
누구보다 치열했던 싸움…“전태일 이후 여성들이 있었다”주인공 이숙희, 신순애, 임미경은 10대 시절 미싱사로 일한 여성들. 여자라서, 가난해서, 아는 게 없어서 공부 대신 미싱을 탔다. 탈출하고 싶을 정도로 가혹한 공장에서 처음으로 의지할 수 있는 동료들을 만나고, 노동교실과 노조에서 처음으로 노동자도 인간답게 살 수 있음을 배운다.

어느덧 중년이 훌쩍 넘은 이들이 다시 모여 옛 사진과 편지를 꺼내 보며 기억을 더듬고, 마지막에는 옛 일터를 찾아 40년 전 자신의 소녀 시절과 마주하는 내용은 큰 울림을 준다. 주류 노동운동사에선 ‘실패’로만 기록됐지만, 누구보다 치열하게 투쟁하며 버틴 이들의 싸움에선 “전태일 이후 여성들이 있었다”는 뜨거운 메시지가 읽힌다.
다큐멘터리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영화사 진진 제공
다큐멘터리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영화사 진진 제공
다큐멘터리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영화사 진진 제공
다큐멘터리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영화사 진진 제공
서울 종로구 PKM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홍영인 작가의 개인전 ‘위 웨어’(We Where)는 마치 영화 ‘미싱’의 주인공들에게 바치는 헌사 같다. 작가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영화 개봉 시기와 전시가 맞물리며 그들의 삶이 겹쳐 보인다.

1972년생인 작가는 자신이 나고 자란 1970~80년대,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 큰 변화를 겪은 이 시기를 돌아보는 작품을 선보인다. 현재 영국 브리스틀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거리를 두고 한국을 바라보며 근대화 과정에서 묻혔던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다시 쓰고 싶었다고 한다.

홍영인 개인전…재봉틀로 70년대 여공들 목소리 짜올려
홍영인 ‘우븐 앤드 에코드’(Woven and Echoed). PKM 갤러리 제공
홍영인 ‘우븐 앤드 에코드’(Woven and Echoed). PKM 갤러리 제공
2m가 넘는 ‘우븐 앤드 에코드’(Woven and Echoed), ‘컬러풀 워터폴 앤드 더 스타스’(A Colourful Waterfall and the Stars) 등은 공업용 재봉틀을 이용해 씨실과 날실을 교차하듯 엮은 작품이다.

펠트 조각보에는 뒤집히거나 파편화된 단어와 문장이 얽혀 있는데, 작가가 1970~80년대 섬유 공장 여공들의 말을 인용해 재구성했다. ‘두려우면서 놀라웠다’, ‘남의 고통이 내 것 같았다’, ‘세상이 곧 변할 것만 같았다’….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의 주인공들이 언급한 그대로다.
홍영인 ‘우븐 앤드 에코드’(Woven and Echoed). PKM 갤러리 제공
홍영인 ‘우븐 앤드 에코드’(Woven and Echoed). PKM 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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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인 ‘컬러풀 워터폴 앤드 더 스타스’(A Colourful Waterfall and the Stars). PKM 갤러리 제공
홍영인 ‘컬러풀 워터폴 앤드 더 스타스’(A Colourful Waterfall and the Stars). PKM 갤러리 제공
천과 직물, 바느질, 자수는 ‘작가 홍영인’을 구성하는 정수와도 같다.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쓸 수 있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스스로 미싱을 타며 남성 중심의 역사에 의해 오랫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 노동자의 개별 서사에 주목하고, 비주류의 목소리를 촘촘히 짜 올린다.

시골에서 상경한 가난한 소녀들이 특별한 교육이나 자격 없이도 할 수 있는 일, 하루에 16시간씩 바치고도 사람 대접을 받지 못했던 이들의 일, 가장 하찮고 가벼운 일. 바로 그 바느질을 통해 수십년 전 여성들을 다시 기록한다는 데서 오는 의미가 무겁다.
홍영인 ‘기도 no.12’(Prayers no.12). PKM 갤러리 제공
홍영인 ‘기도 no.12’(Prayers no.12). PKM 갤러리 제공
홍영인 ‘기도’(Prayers) 시리즈. PKM 갤러리 제공
홍영인 ‘기도’(Prayers) 시리즈. PKM 갤러리 제공
홍영인 ‘컬러풀 랜드’(Colourful Land). PKM 갤러리 제공
홍영인 ‘컬러풀 랜드’(Colourful Land). PKM 갤러리 제공
‘기도’(Prayers) 시리즈는 실루엣만으로 당대를 드러내며 또 다른 감성을 표현한다. 한국 민중운동 보도사진에서 선을 따고, 드로잉과 자수 작업을 거쳤다. 작가는 “사람보다 깃발, 슬로건에 집중했다”며 “영국 여성 참정권 운동인 ‘서프러제트’ 당시 함축적 슬로건에 수많은 이가 모여든 것과 비슷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예술을 통해 거대한 물줄기에서 소외됐던 이들의 목소리를 다시금 조명하는 시도가 그네들의 청춘처럼 찬란히 빛난다. 오는 2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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