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순 선임기자의 5060 리포트] 기제사 어떻게 지내시나요

[임태순 선임기자의 5060 리포트] 기제사 어떻게 지내시나요

입력 2014-02-07 00:00
수정 2014-02-0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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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3대 봉사는 부담스러워”… 베이비부머의 마지막 유산되나

‘제사가 계속될 것인가, 중단될 것인가, 변형될 것인가.’ 제례(祭禮) 문화가 어떻게 변모할까. 설이나 추석 명절이 되면 가족들이 한데 모여 차례(茶禮)를 지내며 조상들의 덕을 기린다. 또 기일(忌日)이 되면 제사(祭祀)를 지내며 돌아가신 분을 추모한다. 오랜 세월 가족의 구심점으로 구성원 간 결속력을 다져온 제례의식이 전환점을 맞고 있다. 횟수가 줄고 음식도 간소화되고 있지만 제사는 베이비부머를 중심으로 한 기성세대의 맏아들, 맏며느리들에겐 여전히 부담이다. 유교문화의 마지막 세대로서 부모세대의 눈높이를 맞춰야 하지만 한편으론 전통의식이 희박한 신세대 자식들에게 제사를 잇게 해야 하는 의무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낀 세대’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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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김씨 청계 종가가 김진 선생의 불천위 제사를 지내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제사가 점차 간소화돼 가족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의성 김씨 청계 종가가 김진 선생의 불천위 제사를 지내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제사가 점차 간소화돼 가족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제사는 조선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받아들인 조선은 가정이 잘 다스려지면 국가도 저절로 통치된다고 보고 효를 강조했다. 효는 제사를 통해 실천하고, 제사는 가정에서는 아버지나 할아버지·장남 등 가부장이, 국가 차원에서는 왕이 집전하도록 했다. 이런 전통은 오늘날까지 계속돼 유교의 발상지인 중국보다 더 오랫동안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건전가정의례준칙에 따르면 기제사는 제주부터 2대조까지로 하되 매년 조상이 사망한 날 제주의 가정에서 지내게 돼 있다. 제수(祭需)는 평시의 간소한 반상(飯床)음식으로 부담 없게 차리도록 했다. 차례는 명절 아침에 맏손자의 가정에서 지낸다고 돼 있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정3품 이상의 높은 벼슬을 가진 사람들만 부모, 조부모를 넘어 증조부모, 고조부모 등 4대 봉사를 하게 돼 있다. 그러나 좋은 집안이 되려는 심리가 작용, 일반인들도 4대 봉사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머니, 할머니 등 배우자까지 모시면 제사횟수가 8번으로 늘어난다. 그러나 들쭉날쭉한 제사일자에 맞춰 많은 친척들이 모이기 어려워지면서 제사횟수는 자연스레 조정되고 있다. 바라봄사진관 나종민(51) 대표는 “종갓집이어서 어머니가 3대 봉사를 해왔으나 몇 년 전 하나로 합쳤다”면서 “조상을 모시는 것이 중요하지 형식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말했다.

제사음식도 간편해지고 있다. 종전에는 ‘붉은색 과실은 동쪽, 흰색은 서쪽에 둔다’는 홍동백서(紅東白西) 등 예법을 따졌으나 최근에는 정성을 중요시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제사 음식은 형제들끼리 분담해 가져오고 제사상을 업체에 주문하는 경우도 점점 늘고 있다. 경기 수원에 사는 이모(51·여)씨는 “시어머니의 허락을 받아 3년 전부터 제사상을 주문하고 있다”면서 “처음에는 내켜 하지 않았지만 이젠 시댁 식구들도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올 설의 경우 제사상 차림이 전년보다 10% 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퇴계 이황 종가는 지난달 문중운영위원회를 열어 만장일치로 불천위(不遷位) 제사를 자정에서 저녁 6시로 앞당기기로 결정했다. 퇴계 종가가 제사 문화의 롤 모델인 만큼 제사 현대화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오는 7월 28일(음력 7월 2일) 퇴계의 권씨 부인 제사와 내년 퇴계 불천위 제사는 초저녁에 지내게 됐다. 불천위는 큰 공이 있거나 도덕성 및 학문이 높아 4대가 지나도 계속 제사를 지내는 것을 말한다.

제례문화의 간소화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선 고향, 문중 등 전통사회의 개념이 해체돼 친척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살게 되면서 기제사에 모이기가 쉽지 않다. 5대조 이상 제사를 모시는 시제(時祭) 때 후손들에게 장학금이나 여비를 지급해 참석을 독려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또 가부장 중심의 유교문화가 퇴조기미를 보이면서 가정살림을 책임지는 여성의 영향력이 커지고 남아선호사상도 엷어지고 있다. 장묘문화가 매장에서 화장으로 바뀌는 것도 제사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최근에는 수목장이나 바다장까지 나올 정도다. 부모세대들도 자식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사후 화장을 당부하고 있다. 경기 고양에 사는 김모씨는 설을 쇠러 시골에서 올라온 어머니가 “죽으면 화장해 돌아가신 아버지와 함께 납골당에 합사하고 봉분을 없애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퇴계의 16세손인 이근필(82) 종손도 ‘죽으면 납골당에 가겠다’는 뜻을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 있다.

그렇다고 제사에 대한 장남이나 장손의 부담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집안 전통에 따라 여전히 예법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경기 과천에 사는 이모(55)씨는 제사상을 차리는 아내에게 미안하다. 장손이어서 제사를 지내지만 맞벌이를 하는 아내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작은아버지 등 집안 어른들이 제수가 잘못됐다는 등 이런저런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도 마음을 상하게 한다. 이씨는 “친척들의 눈이 있는데다 맏이로서의 책임감으로 인해 나까지는 감당하겠지만 아들에게 제사를 계승시킬 자신은 없다”면서 “미래의 며느리가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를 지내려 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에 사는 유모(57)씨는 딸만 둘이다. 그는 절에서 집안 제사를 지내고 있지만 동생 가족들로부터 은근한 압력을 받고 있다. 아들을 둔 제수씨가 자식대에 가서 제사가 넘어오지 않도록 정리해달라는 말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한국국학진흥원 국학진흥팀 김미영 팀장은 “50~60대는 과도기적 세대이다 보니 제사 문화 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친척 등을 의식해 과감하게 나서지 못한다”면서 “그러나 앞으로는 조상을 숭배하는 제례적 측면보다는 가족 간의 결속과 단합을 도모하는 기능이 강해져 기제사가 사라지고 명절에 차례를 지내는 것으로 변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반드시 장남이 제사를 모실 것이 아니라 기제사는 맏이가, 추석과 성묘는 동생이 담당하는 등 가족 간 대화를 통해 윤회봉사(輪回奉祀)를 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면서 “16세기 학자 유희춘(柳希春)이 친필로 쓴 ‘미암일기’(眉巖日記)를 보면 ‘오늘은 큰 누님 댁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딸들이 제사를 지내는 외손(外孫)봉사도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제사를 합사해 합동추모제를 지내거나 시제를 10월 셋째 주 일요일 등으로 정례화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보건사회연구원 정경희 저출산고령사회연구실장도 “제사가 조상의 덕을 기리는 것에서 가족 간의 만남의 장으로 변모하고 있다”면서 “가족들끼리 의논해 기일을 2월 마지막 주 금요일로 정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주위에서 들었다”고 말했다.

중앙대 비교민속학과 박환영 교수는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려는 의식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겠지만 제례문화는 현대적 감각에 맞게 변형될 것”이라면서 “차례는 친척들이 참여하지만 기제사는 형제 등 직계 가족들 중심으로 치러지도록 이원화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stslim@seoul.co.kr
2014-02-07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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