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봉시장 일대 연변거리
‘가리봉 시장에 밤이 익으면,/피가 마르게 온 정성으로/만든 제품을/화려한 백화점으로,/물 건너 코 큰 나라로 보내고 난/허기지고 지친/우리 공돌이 공순이들이/싸구려 상품을 샘나게 찍어 두며/300원어치 순대 한 접시로 허기를 달래고/이리 기웃 저리 기웃/구경만 하다가 /허탈하게 귀가길로/발길을 돌린다’가리봉시장 일대 연변거리. 중국식 간판이 즐비한 것으로 보아 조선족들이 몰려 사는 동네임을 짐작하게 한다.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그랬다. 가리봉시장 일대는 가난하고 지친 노동자들이 허기를 달래던 곳이었고, 골목마다 벌집처럼 웅크린 쪽방들이 우리네 누이와 형들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런 이곳도 구로공단이 첨단화되고, 제조업체들이 외국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누이와 형들 대신 중국에서 건너온 조선족들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3번 출구를 나서면 ‘達來面(진달래냉면)’ ‘狗肉館(구육관)’ ‘歡迎光臨(환영광림·’어서 오세요‘라는 뜻)’ ‘복래반점’ ‘중경노래방’이라는 간판이 눈에 띈다. 그렇듯 가리봉동은 간판부터 다르다. 진달래식당, 진달래구육점 등 ‘진달래’라는 이름의 간판이 많은 게 특징이다. 이곳에서는 식당 메뉴도 한글이되 한글이 아니다. ‘밴세’, ‘썩장’ 등 낯선 글자가 즐비하다. 밴세는 만두, 썩장은 청국장을 일컫는다.
삼거리로 내려오는 길에는 개고기 샤부샤부, 소배필(소삼겹살) 같은 조선족 음식을 파는 가게가 이어져 있다. 삼거리 왼쪽에는 중국동포타운센터가 자리잡고 있다. 삼거리를 지나 직진하면 ‘연변거리’로 불리는 가리봉동 골목이 나온다. 골목을 따라 50여 점포가 모여 있다.
시장에는 두께가 1㎜인 간두부와 우리가 아는 갓김치와는 다른 영채김치, 오리알, 식용잿물(소다) 등도 구경할 수 있다. 조선족이 많이 먹는 옥수수국수와 주먹 두 개 크기의 만두도 있다.
시장을 지나 언덕을 오른 후 골목을 돌아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쪽방촌을 만날 수 있다. 집 한 채를 쪼개 여러 명이 생활하다 보니 벌집과 비슷하다고 해서 벌집촌으로도 불린다. 이곳은 구로공단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 시골에서 올라온 노동자들이 묵던 곳이었다. 공단이 사라진 후에는 조선족 이주민들의 거처로 바뀌었다.
가리봉동은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이 사는 동네였다. 0.43㎢ 면적에 7638명의 외국인이 살고 있다. 그들 대부분이 조선족이다.
그러나 그들이 살고 있는 가리봉동 쪽방촌(벌집촌)과 가리봉시장 일대 크고 작은 중국음식점들도 조만간 볼 수 없게 된다. 이곳은 균형발전촉진지구로 지정돼 빠르면 올 하반기부터 2015년까지 재개발될 운명이다.
가리봉시장에서 20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최영학(63)씨는 “한·중 수교(1992년) 이후 가리봉동은 조선족들이 몰려들면서 활기가 넘치던 곳이었다.”며 “하지만 가리봉동이 재개발된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조선족들도 다른 곳으로 뿔뿔이 떠나 지금은 동네 전체가 가라앉은 상태”라고 말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2010-06-21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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