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집중’ 이재용 스타일… 탄탄한 글로벌 네트워크로 공격 경영[2024 재계 인맥 대탐구]

‘선택과 집중’ 이재용 스타일… 탄탄한 글로벌 네트워크로 공격 경영[2024 재계 인맥 대탐구]

김헌주 기자
김헌주 기자
입력 2024-05-07 00:09
수정 2024-05-07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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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재계의 세대교체 <1>삼성

‘사랑받는 삼성’ 이재용의 승어부

부친 쓰러진 뒤 경영 전면에 나서
에버랜드 상장·한화와 빅딜 주도
책임경영 직후 ‘국정농단’ 휘말려
재판 병행하며 ‘뉴삼성’ 구상 꺼내
가석방 후 450조 투자 계획 밝혀
올 기점으로 글로벌 협업 늘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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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사업보국 기치를 앞세워 삼성그룹의 토대를 다졌다면 고 이건희 선대회장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외형을 키워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삼성전자 브랜드 순위(인터브랜드 기준)는 2012년 9위를 차지하며 처음 10위권에 진입한 뒤 2020년부터 4년 연속 5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구글 등 미국 대표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삼성의 위상이 커진 것이다. 이 선대회장 밑에서 경영 수업을 받으며 삼성의 글로벌 도약기를 함께한 이재용(56) 삼성전자 회장은 ‘더 크고 강한 기업’을 넘어 ‘직원이 회사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국민이 사랑하고 신뢰하는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이 회장은 그게 아버지를 진정으로 뛰어넘는 ‘승어부’(勝於父)라고 본다.

●갑작스럽게 쓰러진 이건희

이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건 2014년 5월 10일 이 선대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다. 미국 출장 중에 갑작스러운 소식을 전해 들은 이 회장은 급히 귀국했다. 2012년 12월 부회장으로 승진한 뒤 최지성(73) 당시 삼성 미래전략실장과 함께 경영 실무를 챙겨 왔지만 큰 방향을 제시해 온 부친의 장기 입원으로 이 회장의 어깨는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그룹 내 변화가 숨가쁘게 진행됐다. 이 선대회장 와병 한 달도 안 돼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삼성에버랜드가 상장 계획을 밝혔다. 회사는 “사업경쟁력 확보 차원”이라고 설명했지만 시장은 지배구조 재편에도 주목했다. 당시 이 회사 최대 주주가 바로 이 회장(지분율 25.1%)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해 11월 삼성SDS 상장, ‘방위산업·화학 4개 계열사’(삼성테크윈·삼성토탈·삼성종합화학·삼성탈레스) 한화그룹에 매각, 12월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 상장 등 대형 이벤트가 이어졌다. 특히 비주력 계열사 정리로 사업 재편 승부수를 띄웠다는 평가가 나왔다. 반도체를 키워야 하는 삼성이 방산을 계속 할 수도 없었다.

한화와의 ‘빅딜’ 성사 배경에는 이 선대회장 때부터 이어진 총수일가 간 친분도 있었다. 이 선대회장은 29세 젊은 나이에 그룹을 이끌게 된 김승연(72) 한화그룹 회장의 멘토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듬해 5월 삼성은 사업적 측면과 지배구조 측면에서 굵직한 결정을 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경기 평택 반도체 생산라인 착공은 메모리 반도체 1위에서 종합반도체 1위 회사로 도약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 회장의 삼성생명공익재단·삼성문화재단 이사장 선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결의도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그해 7월 임시 주주총회에서 두 회사 간 합병안이 통과됐지만 합병이 적법했는지 여부는 최종 결론이 나지 않아 삼성의 험난한 시간도 계속되고 있다.

●“사회적 역할·책임 간과” 법정고백

2016년 갤럭시노트7 배터리 발화 사태로 품질 문제가 발생하자 이 회장은 그해 10월 삼성전자 등기이사에 올랐다. 책임경영을 하겠다는 취지였다. 이 회장이 위기를 정면 돌파하기로 한 이후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전장업체 하만 인수(80억 달러·약 9조원) 발표가 이어졌다. 바이오와 전장은 이 회장이 그룹의 미래 먹거리로 꼽은 사업들이다.

그러나 이 회장이 이사회 활동을 제대로 하기도 전에 ‘국정농단 사건’ 수사가 시작되면서 삼성은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 이 사건에 연루된 이 회장은 이듬해 2월 구속됐다가 1년 뒤인 2018년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이 회장의 뉴삼성 구상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도 이때부터다. 그해 8월 삼성은 3년간 투자 규모를 180조원으로 확대하고 4만명을 채용하겠다고 했다. 2019년 4월에는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1위를 목표로 133조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2020년 5월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선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준법 경영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같은 해 10월 이 선대회장이 별세하면서 이 회장은 온전히 자신의 책임 아래 그룹을 경영하는 막중한 임무를 짊어졌다.

재판과 경영을 병행해야 했던 그는 두 달 뒤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최후진술에서 “선두 기업이 됐지만 사회적 역할, 책임, 국민의 신뢰가 얼마나 막중한지는 간과했다”며 “삼성은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변화를 약속했지만 2021년 1월 다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입사 31년 만에 회장 취임

207일 만에 가석방으로 풀려난 이 회장은 경영에 복귀한 뒤 투자 밑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게 2022년 5월 삼성의 미래 준비라는 이름의 투자 계획이다. 반도체, 바이오, 인공지능(AI)·차세대 통신 등 미래 신사업 중심으로 5년간 45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내용으로, 삼성 측은 이러한 투자가 대표 기업으로서의 선택이 아닌 의무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이 재판에서 밝혔던 것처럼 사회적 역할을 다하겠다는 것이다.

2022년 광복절 특별사면(복권) 대상에 포함된 그는 부친 2주기 직후 이사회 의결을 거쳐 삼성전자 회장에 올랐다. 이 회장이 1991년 삼성전자 총무그룹에 입사한 뒤 31년 만이자 부회장으로 승진한 지 10년 만이었다.

부친과 달리 별도의 취임 행사는 없었다. 이날도 이 회장은 법정에 출석했다. 이번엔 삼성그룹 불법 합병 사건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3년 넘게 진행된 재판에 96차례 출석했지만 1심은 그에게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이달 27일 항소심이 시작돼 또다시 법정을 찾아야 하는 이 회장은 재판이 마무리될 때까지는 공개 행보를 자제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회장이 과거 비주력 계열사를 과감히 정리했던 것처럼 그의 경영 스타일은 핵심 사업에 보다 힘을 주는 ‘선택과 집중’형이다. 탄탄한 글로벌 네트워크는 이 회장의 최대 강점이다.

마크 저커버그(메타), 팀 쿡(애플), 일론 머스크(테슬라) 등 미국의 ‘매그니피센트(M)7’ 기업 수장을 비롯해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창업자,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무케시 암바니 릴라이언스그룹(인도 재벌) 회장과도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등 주요국 인사들과도 교류해 왔다.

그간 사법 리스크로 인해 삼성이 공격보다는 수비에 치중한 면이 있지만 이 회장이 올해를 기점으로 자신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글로벌 기업과 협업 모델을 확장해 가면서 대형 인수합병(M&A)에도 본격 시동을 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지난달에도 독일 자이스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반도체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2024-05-0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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