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연장은 ‘양날의 칼’… 직무·성과 임금체계로 해법 찾아야”[최광숙의 Inside]

“정년 연장은 ‘양날의 칼’… 직무·성과 임금체계로 해법 찾아야”[최광숙의 Inside]

최광숙 기자
최광숙 기자
입력 2024-11-20 00:32
수정 2024-11-20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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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주 한국행정연구원장

공무직 정년 연장 조치 신호탄
고령층 노동시장 확대 방안 모색
인건비 부담에 대부분 기업 난색

정년 연장 세대 간 갈등 어떻게
AI 등 신기술 분야 청년 고용 확대
퇴직 후 재고용 정책 병행도 추진

국민연금 고갈 문제에 도움되나
정년 연장, 연금 개혁과 연계해야
오래 일하고 연금 개시는 늦춰야

저출생·고령화 등 예측 어려운 시대
개발시대와는 다른 리더십 필요
관료의 정치적 중립·전문성 강화

정부와 국가 역량 강화 하려면
AI 활용해 정부 역량 업그레이드
설득·성찰·데이터분석 능력 향상


윤석열 정부 임기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정년 연장, 인공지능(AI) 활용 등 국민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런 이슈는 연금·노동개혁 등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 저출생·고령화 같은 국정 현안과 통합적인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최근 취임한 권혁주 한국행정연구원장은 정년 연장에 대해 “임금체계 개편, 노동시장 이중구조 시정 등과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시절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공정책을 연구해 온 그는 요즘 정부 및 국가 역량 강화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는 “개발시대를 이끈 우리의 정부역량을 AI시대에 걸맞게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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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취임한 권혁주 한국행정연구원장은 지난 11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년 연장은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를 도입해야 기업에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기존 호봉제 임금체계를 개편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 노조의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윤기 기자
최근 취임한 권혁주 한국행정연구원장은 지난 11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년 연장은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를 도입해야 기업에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기존 호봉제 임금체계를 개편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 노조의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윤기 기자


-행정안전부가 공무직 근로자의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단계적으로 연장했다. 정부 주도의 정년 연장 논의가 본격화되나.

“최근 행안부와 대구시 등의 공무직 정년 연장 조치는 정년 연장이 본격 논의될 수 있는 신호탄처럼 보이기도 한다. 저출생·고령화로 노인 부양 비용이 증가하고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들면서 정년 연장 등 고령층의 노동시장 참여를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기업은 반대하는데.

“정년 연장은 ‘양날의 칼’이다. 고용을 안정적으로 보장해 숙련된 고령층의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반면 저성과자들에게도 동일한 고용 연장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비생산적일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 일반화된 호봉제하에서는 정년 연장이 인건비를 크게 늘리는 요인이 된다. 많은 기업들이 정년 연장에 난색을 표하는 이유다.”

●임금체계 개선 분야 점진적 도입을

-이런 딜레마를 해결할 방안은.

“무엇보다 임금체계 개편이 수반돼야 한다. 직무 중심 임금체계로 전환하거나 성과 중심의 보상 시스템을 도입해 기업에 과도한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임금체계 개편과 함께 고용유연성도 같이 논의해야 하는데, 노조는 반대한다.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지 않나.

“맞다. 정년 연장은 연공급제(근속연수에 따라 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임금체계)와 호봉제를 대신한 직무급 도입 같은 임금체계 개편을 논의하지 않으면 실질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직무급은 ‘업무’를 중심으로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하고 그에 맞춰 임금을 결정하는 체계다. 직무와 성과에 따른 임금이 정확하고 공정한지에 대해 노조 등이 이견을 제기할 수 있다.”

-노조와 타협할 여지는 없나.

“직무·성과급 제도를 전면 도입하기보다 직무·성과급 도입이 비교적 용이한 기관·부문부터 점진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 노조 3자의 대화 및 타협이 필요하다.”

-정년 연장으로 청년 일자리가 줄어들지 않을까.

“정부와 기업이 AI, 항공우주, 양자컴퓨터 등 신기술 분야의 일자리를 만들고 청년고용 기회를 늘려 세대 간 갈등을 최소화해야 한다.”

-일본처럼 ‘퇴직 후 재고용’ 등을 추진하는 방안은.

“정년 연장과 퇴직 후 재고용 정책을 병행 추진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정년 연장을 도입하려면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및 조직개편이 선행돼야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따라서 정년을 5년에 한 살씩 단계적 연장하고 그사이에 능력있는 고성과자를 중심으로 재고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비정규직 문제도 같이 풀어야 하지 않나.

“정규직의 기득권만 강화되고 비정규직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노동시장 양극화를 심화할 수 있다. 정년 연장의 필요조건으로 직무·성과 중심 인사관리를 제시한 것도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정년 연장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시정 등 노동개혁과 같이 가야 한다.”

권혁주 행정연구원장은 “정부역량을 높이기 위해서는 일선 공무원들이 기존 관례에 따르기 보다 스스로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대처하는 역량이 필수적”이라며 “특히 갈등이 많은 우리나라는 국민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설득역량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홍윤기 기자
권혁주 행정연구원장은 “정부역량을 높이기 위해서는 일선 공무원들이 기존 관례에 따르기 보다 스스로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대처하는 역량이 필수적”이라며 “특히 갈등이 많은 우리나라는 국민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설득역량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홍윤기 기자


● 경제활동 길어지면 연금개혁에 도움

-정년 연장이 고갈 위기인 국민연금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나.

“저의 연구 결과 국민연금만 가지고는 연금수급자의 일상적 소비의 22%만 충당할 수 있다. 국민연금을 지속 가능하게 유지하려면 수급자가 지금보다 더 오래 일하고 연금개시 연령은 늦춰야 한다.”

-국민연금과 정년 연장 문제를 같이 논의해야 하나.

“국민연금 문제의 본질은 연금수급 기간이 너무 길다는 데 있다. 일하는 기간이 늘어나면 그 기간에는 연금을 받지 않아도 되는 만큼 국민연금과 정년 연장 문제를 연계해 풀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연금개혁 등 정부 개혁이 핫이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최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에게 정부 개혁을 담당하는 ‘정부효율부’ 수장을 맡겨 관료주의 및 규제에 손을 댄다고 한다. 우리 정부도 혁신을 추진하고 있는데.

“불확실하고 위험한 미래에 직면한 상황에서 정부 혁신은 예측성, 민첩성, 유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AI를 활용해 선제적 예측 역량을 높이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통해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정부역량이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나라의 정부역량은 그동안 초고속 경제성장의 바탕이 됐지만 탈산업화된 초고령·지능사회에는 더이상 적합하지 않다. 새로 등장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 역량이 요구된다. 성찰적 역량, 설득 역량, 데이터 분석 역량 등이 필요하다.”

-이들 세 가지 역량이 필요한 이유는.

“앞으로 단순 업무는 점점 AI가 대신할 가능성이 높다. 기존 관례나 명령에 따르기보다 공무원 스스로 비판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커졌다. ‘성찰적 역량’이 중요한 이유다.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은 성찰적 역량의 중요성을 보여 준다. AI 등 데이터에 기반한 정책을 위해서는 ‘데이터 분석 역량’ 제고가 불가피해졌다. 특히 의대 정원 문제 등 다양한 이해관계 충돌로 갈등이 많은 우리 사회에서는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에 한계가 있다. 국민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설득 역량’이 중요해진 것이다.”

-정부역량과 민간역량이 합쳐진 국가역량 역시 약해지는 것은 아닌지.

“예전에는 ‘경제개발을 하자’, ‘민주화를 이루자’, ‘일본을 따라잡자’ 등 시대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에 대한 비전을 공유했다. 하지만 지금은 앞으로 10년 뒤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다. 한국행정연구원은 국가역량, 정부역량을 새롭게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국가역량이 약화된 원인 중 하나는 민주화 이후 집권 세력이 관료사회를 움직이고 국가 비전을 세우는 데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 아닌가.

“우리 사회는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이 두 축을 이루어 서로 경쟁하고 비판하면서 성장했다. 지난 20여년을 돌아보면 새로운 국가 비전을 실현하려는 정치세력 형성이 필요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정권 교체가 빈번해지면서 관료의 정치적 중립성, 전문성이 산업화시대보다 더 약화된 것 같다.”

권혁주 행정연구원장은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로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공공정책을 연구해왔다. 요즘 AI시대에 걸맞는 정부 및 국가역량 강화 방안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그래서다.   홍윤기 기자
권혁주 행정연구원장은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로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공공정책을 연구해왔다. 요즘 AI시대에 걸맞는 정부 및 국가역량 강화 방안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그래서다.
홍윤기 기자


●국민 설득 시키는 정부의 ‘설득 역량’

-신산업이 등장하면 규제를 놓고 늘 갈등이 생기지만 정부의 조정 능력은 회의적이다.

“지금은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전환의 시대다. AI, 저출생·고령화 등은 인류가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과제다. 지금까지는 정부가 자원 투입 등에 신경을 썼다면 이제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성과 중심, 문제 해결 중심으로 가야 한다.”

-기후변화 대처 등은 여러 부처 간 협업이 필요한데.

“부처 간 칸막이와 경직된 업무 절차 때문에 실질적인 협력이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다. 범정부 차원에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업 및 인사교류, 공동예산제도 등 제도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 등에 비해 공공부문에서 AI 활용 속도가 더디다.

“AI가 학습하는 데이터가 편향적이면 처리 결과도 편향적, 차별적인 성향을 갖게 된다. 데이터 오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공공부문 AI는 공정성, 투명성, 민주성, 합법성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민간부문보다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공공기관의 AI 활성화를 위한 과제는.

“인공지능기본법을 빨리 만들어 AI 기술 혁신과 안전한 AI 활용을 위한 정책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AI의 효과적인 활용을 위해서는 데이터 품질 제고뿐 아니라 공공기관 망분리 재검토, 기관별 맞춤형 AI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권혁주 한국행정연구원장은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출신으로 공공정책 이론과 실무 모두에 밝은 정책전문가다. 지난 9월 한국행정연구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사회 대전환기에 걸맞은 새로운 국가역량 개발에 힘쓰고 있다. 유엔 사회개발연구소 연구조정관, 국제개발협력학회장, 국제개발협력위원회·정부업무평가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민주주의와 관료제, 발전형 복지국가,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 업적으로 한국인 최초로 영국 사회과학 학술원의 정회원으로 선정됐다. 최근 연구로 ‘갈등사회의 공공정책: 자유와 책임의 관점에서’ 등이 있다.
2024-11-20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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