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위로다] <10>신철규 시인
일러스트 강미란 기자 mrkang@seoul.co.kr
나는 생각을 멈출 수 없습니다
내가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을
생각을 멈추어도 나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인간이 아닌 것이 인간이 되려고 한다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이 되려고 한다
눈사람은 녹았다 얼어붙었다 하는 사람
더 이상 녹지 않을 때까지 타오르는 사람
더 이상 얼어붙지 않을 때까지 흐르는 사람
두 사람의 발자국이 모였다가 갈라지는 지점에서
우리는 어떤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을까
마음으로 와서 몸으로 나가는 것들
몸으로 와서 마음에 갇힌 것들
굳은 마음
손을 대면 손자국이 남을 것 같은
우리는 여권을 잃어버린 여행자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서로의 발끝만 내려다보면서
손바닥을 펴서 네 심장에 갖다 댈 때
눈 속의 지진
지진계처럼 떨리는 속눈썹
나는 그림자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몸을 웅크린다
눈사람의 혈관에는 얼어붙은 피가 고여 있다
모래알갱이가 덕지덕지 붙은 몸으로
거센 바람에 휘청거리고 있다
신철규 시인
1980년 경남 거창 출생.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신동엽문학상 수상.
2020-05-2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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