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위로다] <5> 김건영 시인
일러스트 김송원 기자 nuvo@seoul.co.kr
실연당한 친구는 자꾸 울기만 했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아서 소고기를 사주었다 먹다가 다시 울먹이며 친구가 말했다 이렇게 슬픈데 고기는 왜 맛있냐
마음을 다해도 위로가 안 돼 어떤 충고는 고충이 된다 꼰대가 되지 않으려거든 말없이 소고기를 사거나 세상을 위한 밧줄이나 될 것
정말 말로는 안 되는 게 있다 어떤 위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 무얼 하지 사실 무얼 해도 안 돼 하지 마 행복 추구권 말고 항복 추구권 이것은 파이트가 아니다 일방적 구타지 희망 고문이지 게임이 안 돼 게임이 현실에서 안 되니 게임이라도 하지 게임하는 애들 괴롭히지 마라
나비처럼 벌어서 벌처럼 쓴다 그래도 집은 못 사 그래서 아이를 못 낳아 네 아이의 친구를 앗아갈 거야 위로가 안 되니 위로 한마디 하는 거지 뭐 위로는 아래로 해야지
세계를 미워할 거면 날카롭게 미워하자 타인을 괴롭히지 않는 선에서 우리 국민 하고 싶은 거 다 해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의 아니무스 참고 버티기만 하면 뭐가 좋냐 아니 누가 좋냐고 말하면서 맛있는 것을 사 먹고 힘내야지 더 굵은 밧줄이 될 수 있도록
그래도 지구는 돌았다
그러나 살다 보면 세상엔 아름다운 일이 좀 있을 거야(정말일까)
그러니 이 시 비슷한 것을 빠져나오며 또 한 마디 한다
우리는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만 벼리고 있구나
벼린 시간이 우리를 단단하게 할 거야(정말로)
김건영 시인
1982년 광주 출생. 2016년 ‘현대시’로 등단.
2019년 시집 ‘파이’ 출간. 같은 해 박인환문학상 수상.
2020-05-1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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