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는 위로가 안 돼

위로는 위로가 안 돼

입력 2020-05-10 17:56
수정 2020-05-11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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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위로다] <5> 김건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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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김송원 기자 nuvo@seoul.co.kr
일러스트 김송원 기자 nuvo@seoul.co.kr
암이 전이되었다는 소식에 아버지는 가만히 눈을 감고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았다 위로할 방법이 없어 입을 닫고 있다가 미스터 트롯을 틀어 드렸다 아버지께서 웃으셨다 위로는 윗사람에게 어떻게 하는 거지 받는 사람은 받기만 해서 모른다

실연당한 친구는 자꾸 울기만 했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아서 소고기를 사주었다 먹다가 다시 울먹이며 친구가 말했다 이렇게 슬픈데 고기는 왜 맛있냐

마음을 다해도 위로가 안 돼 어떤 충고는 고충이 된다 꼰대가 되지 않으려거든 말없이 소고기를 사거나 세상을 위한 밧줄이나 될 것

정말 말로는 안 되는 게 있다 어떤 위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 무얼 하지 사실 무얼 해도 안 돼 하지 마 행복 추구권 말고 항복 추구권 이것은 파이트가 아니다 일방적 구타지 희망 고문이지 게임이 안 돼 게임이 현실에서 안 되니 게임이라도 하지 게임하는 애들 괴롭히지 마라

나비처럼 벌어서 벌처럼 쓴다 그래도 집은 못 사 그래서 아이를 못 낳아 네 아이의 친구를 앗아갈 거야 위로가 안 되니 위로 한마디 하는 거지 뭐 위로는 아래로 해야지

세계를 미워할 거면 날카롭게 미워하자 타인을 괴롭히지 않는 선에서 우리 국민 하고 싶은 거 다 해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의 아니무스 참고 버티기만 하면 뭐가 좋냐 아니 누가 좋냐고 말하면서 맛있는 것을 사 먹고 힘내야지 더 굵은 밧줄이 될 수 있도록

그래도 지구는 돌았다

그러나 살다 보면 세상엔 아름다운 일이 좀 있을 거야(정말일까)

그러니 이 시 비슷한 것을 빠져나오며 또 한 마디 한다

우리는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만 벼리고 있구나

벼린 시간이 우리를 단단하게 할 거야(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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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영 시인
김건영 시인
■김건영 시인은

1982년 광주 출생. 2016년 ‘현대시’로 등단.

2019년 시집 ‘파이’ 출간. 같은 해 박인환문학상 수상.
2020-05-1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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