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소설 속 흑인 여성들, 낡은 질서에 저항하다

과학소설 속 흑인 여성들, 낡은 질서에 저항하다

이슬기 기자
입력 2020-07-27 17:44
수정 2020-07-28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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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뷸러상 수상한 버틀러의 유작 ‘쇼리’
3년 연속 휴고상 제미신의 ‘검은 미래…’
SF 장르서 소외된 흑인들 저항성 담아

과학소설(SF)의 대가로 널리 알려진 흑인 여성 작가들의 단행본이 나란히 출간됐다. 이들 소설에는 그간 SF에서 소외됐던 흑인 여성들이 등장해 낡은 질서에 맹렬히 저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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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과학소설 분야에서 양대 권위를 자랑하는 네뷸러상과 휴고상을 모두 수상한 옥타비아 버틀러. 인종과 젠더 문제를 독특한 세계관 속에서 풀어낸 작품 경향이 유작 ‘쇼리’에도 이어진다. 프시케의숲 제공
2015 과학소설 분야에서 양대 권위를 자랑하는 네뷸러상과 휴고상을 모두 수상한 옥타비아 버틀러. 인종과 젠더 문제를 독특한 세계관 속에서 풀어낸 작품 경향이 유작 ‘쇼리’에도 이어진다.
프시케의숲 제공
‘쇼리’(프시케의숲)는 네뷸러상, 휴고상 등을 수상한 미국 작가 옥타비아 버틀러(1947~2006)가 생애 마지막으로 남긴 소설이다. 외견상 소녀로 보이는 53세의 흑인 뱀파이어 주인공이 치명적인 기억상실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의 정체를 찾아나간다는 이야기다. 버틀러 특유의 흥미진진한 플롯과 속도감 있는 필치 아래 젠더와 인종, 섹스, 중독 등의 문제가 아슬아슬한 지점까지 거침없이 다뤄진다. 버틀러는 뱀파이어의 흡혈 행위에서 ‘중독’과 ‘섹스’라는 키워드를 뽑아내 집요하게 파고들고, 모든 것이 파괴된 폐허 위의 공생의 공동체를 쌓아올린다. 그가 만드는 공동체는 사랑과 쾌락에 기반하며, 차별과 폭력이 없으며, 모계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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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3년 연속 휴고상 최우수 장편소설상을 수상하며 전인미답 경지에 오른 N K 제미신. 첫 소설집 ‘검은 미래의 달까지 얼마나 걸릴까’에선 작품 세계의 뿌리를 짐작할 수 있다. ⓒLaura Hanifin
2016년부터 3년 연속 휴고상 최우수 장편소설상을 수상하며 전인미답 경지에 오른 N K 제미신. 첫 소설집 ‘검은 미래의 달까지 얼마나 걸릴까’에선 작품 세계의 뿌리를 짐작할 수 있다.
ⓒLaura Hanifin
‘검은 미래의 달까지 얼마나 걸릴까?’(황금가지)는 휴고상을 3년 연속 수상한 N K 제미신의 첫 소설집이다. ‘부서진 대지’ 시리즈로 널리 알려진 제미신 작품 세계의 근간을 알 수 있는 책으로, 비행선이 보편화된 19세기 미국 배경의 스팀펑크물, 23세기 외계 생명체와의 무역 협상 등 다양한 시공간과 소재를 다뤘다. 제목은 제미신이 흑인 여성으로서 SF와 판타지를 사랑하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털어놨던 동명의 에세이에서 따왔다.

머리말에서 제미신은 여성과 유색인이 소외당하던 현실을 고하며, 스스로를 제외시킬 수 없었기에 이야기에 꾸준히 자신의 소설에 흑인 캐릭터를 넣었다고 밝힌다. 특히 민권운동이 확산되던 1960년대 앨라배마주를 무대로 사악한 요정에게서 딸을 지키려는 여성의 분투를 다룬 ‘붉은 흙의 마녀’, 혁명으로 세운 최초의 흑인 공화국인 아이티의 첩자 여성과 미국 혼혈 여성 사이의 로맨스를 그린 ‘폐수 엔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닥친 뉴올리언스에서 ‘괴물’이라는 형태로 실체화한 혐오에 대항해 분투하는 인물들을 다룬 ‘잔잔한 물 아래 도시의 죄인들, 성자들, 용들 그리고 혼령들’은 현재도 공고하게 남아 있는 인종차별의 민낯에 전면 대항하는 작품이다.

제미신은 1972년 미국 아이오와에서 태어나 낮에는 상담 심리사로 일하고 밤에는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2016년 ‘부서진 대지’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다섯 번째 계절’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는 처음 휴고상 최우수 장편상을 수상했다. 이어 ‘오벨리스크의 문’, ‘석조 하늘’까지 수상에 성공, 한 시리즈의 3년 연속 장편상 수상이라는 휴고상 역사에 전례 없는 기록을 낳았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2020-07-2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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