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녀들/시노다 세츠코 지음/안지나 옮김/이음/340쪽/1만 4800원
아픈 부모 돌봄 며느리서 딸의 몫회사까지 그만두고 곁에 있지만
돌아오는 건 심술에 가까운 행동
유독 여성들만 ‘돌봄 노동’ 대물림
다른 가족 구성원은 왜 외면할까
몸이 불편한 노인을 부축하고 있는 여성 요양보호사의 뒷모습은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이 시대의 단면이다. 시노다 세츠코의 ‘장녀들’은 가정 안에서 돌봄노동을 떠안고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들의 삶을 통해 가족 구성원의 역할, 현대 사회의 사각지대를 꼬집는다.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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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장녀들’의 돌봄노동은 전과 다른 양상을 띤다. 이전에 일본 사회에서 노인의 돌봄노동을 담당하는 것은 주로 며느리였다. 수록작 ‘퍼스트레이디’ 속 게이코의 어머니는 골다공증으로 자리보전한 시어머니의 수발을 헌신적으로 해 왔다. 그러나 세대가 바뀌자 아픈 어머니를 돌보는 일은 1인 가구인 장녀의 몫이 됐다. 결혼한 동생들은 각자의 가정을 돌보느라 부모를 돌볼 겨를이 없고, 어머니에게 자신의 분신과 같은 장녀는 현실적으로 만만한 대상이다. 마음의 거리가 ‘0’에 가깝다는 것은 이들 장녀들의 돌봄노동을 더욱 힘들게 하는 요인이다. 부모들이 며느리에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심술에 가까운 행태도, 맏딸에게는 거침없이 내보이기 때문이다.
‘장녀들’ 속 여성들에게 돌봄노동은 부모와의 다툼으로 그치지 않는다. 밥벌이마저 내려놔야 하는 지독한 굴레로 작용한다. ‘집 지키는 딸’ 속 나오미는 절대 간병인은 들이지 않겠다는 어머니의 주장에 21년간 다니던 회사를 퇴직한다. 그러나 그런 부모를 오롯이 이해하는 것도 장녀들이어서 이들에게 운신의 폭은 더더욱 좁다. 지역 유지인 아버지의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하며 집안의 대소사를 처리하는 게이코에게 자신의 삶이란 없다. 그러나 그는 중상류층 의사 집안에 시집 와 남편 위주의 질서에 편입되기를 거부하던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한다.
평생 자식들을 돌보았던 부모, 늙은 부모를 돌봐야 하는 자식 간의 화해는 애시당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시차를 두고 일방향적인 관계가 계속되는 탓이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여성들이 육아를 책임졌듯, 돌봄노동이 비혼 여성의 몫으로 고스란히 환원되는 구조에 대해서는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국가가 육아라는 노동에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듯, 부모에 대한 돌봄의 영역에도 지원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더불어 가정 내에서 대물림되는 여성의 돌봄노동에 대해 소설은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왜 돌봄의 부담이 여전히 균일하게 돌아가지 않는가. 남편과 아내, 딸과 아들까지, 가족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방기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소설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2020-06-05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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