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쁜 친구와 같은 모둠이 됐다. 모둠 과제를 위해 우리 집에 왔던 친구는 매일같이 우리 집에 드나든다. 내 방을 자기 방처럼 쓰고, 엄마와 시시콜콜한 수다를 떨며 나보다 더 우리 집 ‘인싸’(인사이더)가 된 것만 같다. 걷잡을 수 없는 불안감과 질투에 휩싸이는 나. 대체 얘는 왜 자꾸 우리 집에 오는 걸까?
여기서 어린 한별의 어리지 않은 행동이 빛을 발한다. 한때 나를 초조하게 했던 친구이건만, 한별은 예빈의 손을 꼭 잡고, 아빠를 대면해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도록 돕는다. ‘난 노력하지 않아도 이예빈이라는 미로에서 저절로 빠져나오게 될 거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137쪽)는 다짐은 얼마나 귀한가. 노력하지 않아도 되지만 내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 기꺼이 노력하겠다는 선언이니까.
어른으로서도 이해 가는 아이들의 심리전과 무책임한 어른들 앞 책임감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렸다. “우리가 어리다고 슬픔까지 어린 건 아니”(157쪽)라는 한별의 말 앞에선 절로 숙연해진다. 여러 지점에서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2020-05-29 2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