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손수 표지 작업해 엮은 ‘산비둘기’… 어머니 그린 9편 등 25편 세상 밖으로
동화작가 권정생
1972년 청년 권정생은 단 두 권의 동시집을 만들어 하나는 본인이 소장하고, 다른 하나를 ‘기독교교육’ 편집인이던 오소운 목사에게 건넸다. 오 목사가 갖고 있던 책을 2018년부터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에서 소장하다 48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다.
수술을 거듭하며 겨우 살아났지만 어머니의 죽음은 그의 몸과 마음, 그리고 시에 크고 깊은 상처를 남겼다. ‘어머니가 아프셔요/ 누워 계셔요// 내 아플 때/ 어머니는 머리 짚어 주셨죠// 어머니/ 나도 머리 짚어 드릴까요?// 어머니가 빙그레/ 나를 보셔요// 이렇게 두 손 펴고/ 살포시 얹지요// 눈을 꼬옥 감으셔요/ 그리고 주무셔요// 나도 눈 감고/ 기도드려요.’(56~57쪽, ‘어머니’ 전문)
별의 목소리를 빌려 어머니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읊은 시도 있다. ‘엄마 별이/ 돌아가셨나 봐// 주룩주룩 밤비가/ 구슬피 내리네.// 일곱 형제 아기 별들/ 울고 있나 봐//.’(36쪽, ‘밤비’ 부분)
이외에는 하나님과 인간, 자연에 관한 시 등 평생을 동심으로 살았던 권정생의 내면을 정갈하게 드러내는 시편들이 많다. 아이들 눈높이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들이 기도드릴 때/ 하나님은 찾아오셔요.// 목사님 말씀이/ 정말일까?// 석아는 기도 시간에/ 살짝 눈을 떠 봤죠.//(중략)// 하나님은/ 마음속에 계셔요.’(22~23쪽, ‘마음속에 계셔요’ 부분) 시 하나하나 천진한 동심이 담겼다.
권정생은 ‘산비둘기’를 손수 책으로 꾸리면서 사인펜으로 동시를 쓰고 색종이를 활용해 표지와 본문을 꾸몄다. 정식 출간된 ‘산비둘기’도 표지와 본문의 그림 모두 작가의 생전 손길을 그대로 살리려 애썼다. 그 덕에 소박한 질감이 인상적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2020-05-2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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