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천자오루 지음/강영희 옮김/사계절/324쪽/1만 7000원
“성 자원봉사자의 손길에 나는 정말이지 시원해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적어도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죽기 전까지 누군가와 섹스 한 번 해보지 못했다면 틀림없이 우울과 원망으로 점철된 인생이라 관에 들어가지 않으려 버텼을지도 모르겠다.”
스티븐이라는 중증장애인 청년이 대만의 장애인 성 자원봉사 단체인 ‘손천사’ 홈페이지에 ‘그렇게 시원해 본 적이 있었던가’라는 제목으로 올린 감상문의 일부다. 스티븐은 이 특별한 서비스의 첫 번째 대상자였고, 그 역시 이 서비스를 통해 생애 처음으로 황홀경을 경험한 뒤 이 같은 감상문을 남겼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사랑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없는 듯 무시되거나 특별한 미담으로만 소비되는 사랑이 있다. 바로 장애인의 성과 사랑 이야기다.
●‘대만판 도가니’ 학교 취재·인터뷰 담아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은 ‘대만판 도가니’라 불리는 특수학교 성폭력 사건을 폭로한 언론인 출신 저자가 장애인과 가족, 장애인을 위한 성 서비스 제공자 등을 취재하고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장애인들이 가슴에 꼭꼭 묻어 뒀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에두르지 않고 핵심을 묻는 저자 앞에서 장애인들은 어둠 속에 방치했던 마음속의 말을 다 꺼내 놓았다. 세상은 이들을 ‘장애인’이라는 하나의 말로 분류하지만, 1만 장애인에겐 만 가지 빛깔의 사랑이 숨 쉬고 있었다.
장애인이 성과 사랑을 추구하는 데는 경제적 빈곤, 자신감 결여, 이동의 곤란 등 무수한 난관이 늘어서 있다. 위험이 따를 때도 있다. 욕망을 혼자 해결하다 손가락뼈가 부러진 장애인 이야기는 비장애인들 입장에서야 황당한 일이겠지만 장애인들에겐 슬픔이 북받칠 일이다.
책은 장애인의 성과 사랑에 관한 거의 모든 쟁점을 각각의 사례를 곁들여 소개하고 있다. 부모가 장애인 자녀의 성생활, 출산과 양육을 대신 결정해도 되는 걸까. 일본의 화이트 핸즈, 대만 손천사, 네덜란드 성 보조금 등 국가나 민간에서 중증 장애인에게 유·무료의 성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복지일까, 또 다른 차별일까.
●“성은 살아가는 모든 인간의 생존 방식”
가장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쟁점은 이것 아닐까 싶다. 장애인은 부모가 될 자격이 없는가.
‘도라: 욕망에 눈뜨다’(2015)란 영화가 있다. 지체장애인인 열여덟살 도라는 우연히 부모님의 잠자리를 목격한 뒤 욕망에 눈을 뜬다. 처음 만난 남자와 한 잠자리에서 이어진 임신. 영화는 이 대목에서 답변하기 쉽지 않은 많은 물음을 던진다. 몸은 성숙한 여성이지만 지능은 어린아이와 다름없는 도라가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는 누가 돌볼까. 성이 출산과 양육의 책임으로 이어질 때 도라의 권리가 제한될 수 있을까. 낙태를 결정한 도라의 부모는 비난받아 마땅한가.
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확고하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신체의 자유, 출산과 양육의 권리를 침해당해서는 안 된다. 더더욱 생식기를 적출하는 비인륜적인 일들이 자행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성은 양다리 사이의 문제만이 아니라 자아를 탐색하고 욕망과 어울려 살아가는 모든 인간의 생존 방식”이라며 “타인과 신체 접촉을 통해 더 깊고 장기적인 관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은 모든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라고 강조했다.
손원천 선임기자 angler@seoul.co.kr
스티븐이라는 중증장애인 청년이 대만의 장애인 성 자원봉사 단체인 ‘손천사’ 홈페이지에 ‘그렇게 시원해 본 적이 있었던가’라는 제목으로 올린 감상문의 일부다. 스티븐은 이 특별한 서비스의 첫 번째 대상자였고, 그 역시 이 서비스를 통해 생애 처음으로 황홀경을 경험한 뒤 이 같은 감상문을 남겼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사랑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없는 듯 무시되거나 특별한 미담으로만 소비되는 사랑이 있다. 바로 장애인의 성과 사랑 이야기다.
●‘대만판 도가니’ 학교 취재·인터뷰 담아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은 ‘대만판 도가니’라 불리는 특수학교 성폭력 사건을 폭로한 언론인 출신 저자가 장애인과 가족, 장애인을 위한 성 서비스 제공자 등을 취재하고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장애인들이 가슴에 꼭꼭 묻어 뒀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에두르지 않고 핵심을 묻는 저자 앞에서 장애인들은 어둠 속에 방치했던 마음속의 말을 다 꺼내 놓았다. 세상은 이들을 ‘장애인’이라는 하나의 말로 분류하지만, 1만 장애인에겐 만 가지 빛깔의 사랑이 숨 쉬고 있었다.
장애인이 성과 사랑을 추구하는 데는 경제적 빈곤, 자신감 결여, 이동의 곤란 등 무수한 난관이 늘어서 있다. 위험이 따를 때도 있다. 욕망을 혼자 해결하다 손가락뼈가 부러진 장애인 이야기는 비장애인들 입장에서야 황당한 일이겠지만 장애인들에겐 슬픔이 북받칠 일이다.
책은 장애인의 성과 사랑에 관한 거의 모든 쟁점을 각각의 사례를 곁들여 소개하고 있다. 부모가 장애인 자녀의 성생활, 출산과 양육을 대신 결정해도 되는 걸까. 일본의 화이트 핸즈, 대만 손천사, 네덜란드 성 보조금 등 국가나 민간에서 중증 장애인에게 유·무료의 성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복지일까, 또 다른 차별일까.
●“성은 살아가는 모든 인간의 생존 방식”
가장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쟁점은 이것 아닐까 싶다. 장애인은 부모가 될 자격이 없는가.
‘도라: 욕망에 눈뜨다’(2015)란 영화가 있다. 지체장애인인 열여덟살 도라는 우연히 부모님의 잠자리를 목격한 뒤 욕망에 눈을 뜬다. 처음 만난 남자와 한 잠자리에서 이어진 임신. 영화는 이 대목에서 답변하기 쉽지 않은 많은 물음을 던진다. 몸은 성숙한 여성이지만 지능은 어린아이와 다름없는 도라가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는 누가 돌볼까. 성이 출산과 양육의 책임으로 이어질 때 도라의 권리가 제한될 수 있을까. 낙태를 결정한 도라의 부모는 비난받아 마땅한가.
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확고하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신체의 자유, 출산과 양육의 권리를 침해당해서는 안 된다. 더더욱 생식기를 적출하는 비인륜적인 일들이 자행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성은 양다리 사이의 문제만이 아니라 자아를 탐색하고 욕망과 어울려 살아가는 모든 인간의 생존 방식”이라며 “타인과 신체 접촉을 통해 더 깊고 장기적인 관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은 모든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라고 강조했다.
손원천 선임기자 angler@seoul.co.kr
2020-02-07 3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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