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전에 책이 있었다] 권력의 감시자, 언론을 위한 반면교사

[뉴스 전에 책이 있었다] 권력의 감시자, 언론을 위한 반면교사

입력 2017-05-12 17:36
수정 2017-05-1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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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

한국 사회를 들었다 놨다 했던 탄핵 정국, 뒤이어 치러진 장미 대선은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으로 귀결되었다. 총리 후보자 등을 직접 발표한 대통령의 파격 행보, 어쩌면 정상적인 업무 수행으로 난국 탈출의 실타래 하나 정도는 풀어낸 모습이다. 물론 실타래가 다시 엉킨 곳도 적잖아 보인다. 이를테면 좌고우면했던 몇몇 공중파와 종편 방송사들, 일부 신문들은 엉킨 실타래를 풀기 위해 새로운 동력을 찾아 나선 모양새다. 매체뿐 아니라 이번 정국 내내 가시 돋친 말들을 쏟아낸 어떤 패널들은 아예 노골적으로 용비어천가라도 부를 태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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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시공사)는 가난한 이민자에서 미국 언론의 대부가 된 조지프 퓰리처의 삶을 복원한 책이다. 퓰리처는 정치·경제적으로 독립된 언론이야말로 사회의 한 줄기 빛이라고 생각했다. 정치인과 기업 등과 결탁해 편의를 봐주거나 광고를 수주하는, 예나 지금이나 관행처럼 행해지는 일을 퓰리처는 끊어내고자 했다. 퓰리처는 권력이 아닌 “오직 대중을 위한 신문”을 목숨처럼 여겼고, 하여 “언론계의 독립투사이자 민주주의적 정의의 수호자”라고 불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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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인수한 조간 ‘뉴욕 월드’가 그 못자리였다. 이후 ‘월드’로 이름을 바꾼 이 신문은 여론을 호도하는 정치인과 당시 흔한 일이던 기업의 담합을 사정없이 질타했다. 노동자의 이익을 한사코 대변하는 일도 쉬지 않았다. 대중의 지지까지 받게 되면서 퓰리처의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했는데, 세간에서는 “미국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고 싶은 사람은 퓰리처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 떠돌았다. 100만부 이상 발행되었으니, 그런 말이 도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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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석 출판평론가·뉴필로소퍼 편집장
장동석 출판평론가·뉴필로소퍼 편집장
문제는 역시 욕망이었다. 퓰리처는 “언론이 가진 권력을 정점까지 끌어올린” 자신의 능력에 도취되었다. ‘월드’가 퓰리처에게 지나친 권력을 준 것이다. 이내 노동자를 대변한다는 원칙은 사라졌고, 더 크게 몸집을 불리기 위해 스스로가 비판했던 정치권력은 물론 기업과도 담합하기에 이른다. 한때 “냉소적이고 돈을 버는 데에만 혈안이 된 선동적인 언론은 그 천박한 수준에 걸맞은 천박한 국민을 양산할 뿐”이라고 말했던 퓰리처는 선동적인 언론을 통해 천박한 국민을 양산하는 데 앞장섰다. 빛이 길면 그림자도 길어지게 마련인가, 말년의 퓰리처는 황색 언론의 대명사가 되었다. 핑계가 없지 않다. 세월과 함께 가족과 친구들이 하나둘 곁을 떠났고, 시력을 잃으면서는 자신의 안위만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

죽기 몇 해 전 퓰리처는 “내가 죽은 뒤 사람들이 나를 그저 어느 신문의 발행인 정도로만 기억할 것을 생각하니 정말 끔찍하다. 나는 재산이 아니라 정치에 많은 열정을 쏟아부었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정치가 아니라 자유와 평등이라는 보편적인 이상을 추구하는 정치에 한평생을 다 바쳤다”는 글을 남겼다. 정말 그러한가는 당대 신문을 보았던, 그리고 후대의 평자(評者)들의 몫으로 남겨졌다. 신문과 방송 등 모든 언론은 한 사회의 공기(公器)로,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그 사회의 정치·사회·문화적 수준을 반영한다.

‘퓰리처’는 조지프 퓰리처가 남긴 공과를 통해 우리 시대 언론의 역할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신문은 진실을 말할 절대적인 자유를 누린다”는 말과 함께 권력의 감시자 역할에 충실했던 퓰리처는 “눈먼 왕”으로 쇠락했다. 탄핵 정국과 장미 대선을 전후해 권력의 감시자를 자처했던 언론들 가운데 몇몇은 벌써 “눈먼 왕”이 되고 있는 것 아닌가 의심스럽다.

장동석 출판평론가

2017-05-1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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