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열한 회사 이상한 회사 참 나쁜 회사

비열한 회사 이상한 회사 참 나쁜 회사

김성호 기자
입력 2015-10-16 22:36
수정 2015-10-17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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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열 일터, 당신을 위한 회사는 없다/데이비드 와일 지음/송연수 옮김/황소자리/528쪽/2만 8000원
#1. 오하이오의 한 케이블 설치기사는 미국 제일의 케이블 설치회사인 캐스콤 로고가 붙은 작업복 차림으로 캐스콤이 요구하는 새벽 시간에 타임워너사의 케이블 수리 중 사망했다. 하지만 캐스콤도, 타임워너도 유감만 표시했을 뿐 법적 책임에서는 발을 뺐다. 작업 중 사망한 노동자는 작업 단위로 돈을 받는 자영업자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2. 빈센트 스미스라는 29세 남성은 리용 앤 산스 허쉬 초콜릿 생산공장에서 일하다 섭씨 50도의 초콜릿 탱크 속으로 떨어졌다. 10여분이 지난 뒤에야 소방관들이 사고 현장에 도착했고 스미스는 사망한 뒤였다. 감사 결과 작업상 여러 건의 보건안전 규정 위반이 드러났지만 허쉬는 이 사건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자신들과 무관한 하청업체 소관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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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다반사인 노동 현장의 사고와 대응을 보여 주는 일련의 사례들이다. 미 노동부 산하 근로기준분과 첫 종신행정관인 경제학자가 쓴 ‘균열 일터, 당신을 위한 회사는 없다’에서는 이것 말고도 노동시장의 위험한 변화를 고발한 안타까운 실상이 세세하게 풀어진다. 그리고 그 위험한 변화를 저자는 한마디로 ‘균열 일터’로 집약해 표현한다.
‘균열 일터’란 쉽게 말하자면 일터가 쪼개지고 있다는 뜻이다. 더 자세하게 풀이하자면 하청, 아웃소싱, 위탁경영, 프랜차이즈, 간접고용, 비정규직, 도급제도 등 기업들이 기능과 인력을 외주화하는 경향을 말한다. 혁신의 논리를 앞세워 ‘비핵심 역량’을 털어내는 기업들의 생존 전략을 비꼬는 말이기도 하다. 과거 IBM은 공장 노동자들까지 직접 고용했지만 현재의 애플은 전 세계 75만명 직원 중 단 6만 3000명만 직접 고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미 전 세계의 노동시장은 그 ‘균열 일터’의 늪 속에 깊숙이 빠져 있다. 책은 바로 그 같은 기업들의 전략으로 인해 점점 더 위태로워지는 노동환경과 병폐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대기업들이 자체적으로 해결하던 경비며 청소, 제조, 관리 등의 기능을 외부 시장으로 분리하면서 좋은 일자리는 줄고 고용 관계는 불안정해졌으며 일터는 더 팍팍해졌다고 지적한다. 기업들의 ‘고용 털어내기’를 현대사회의 일자리와 일터의 모습을 악화시키는 핵심 원인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일터의 균열’은 당연히 비정규직 양산이며 노동조건 악화는 물론 실질임금 정체, 중산층 붕괴, 부의 불평등 문제를 낳는다. 실제로 저자는 “현장 조사 결과 사내에 있던 대다수 직종의 실질임금이 사실상 정체됐고 대기업이 전 직원과 함께 수익을 나누던 곳에 균열이 생기면서 경제활동으로 창출된 가치를 배분하는 방식에도 불평등이 점증하고 있다”고 썼다.
그렇지만 자본과 노동, 그 어느 쪽에도 일방적인 책임을 돌리지는 않는다. 대신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해 법, 제도 같은 사회적 방책들을 꼼꼼하게 제시했다. 미국 현상과 사례들에 치중됐지만 지금 노동문제의 핵심을 새로운 관점에서 파악한 점이 도드라진다. 공공정책이 기업의 일거양득 행태를 방치해 왔다는 지적을 비롯해 현행 노동관계법과 근로규정이 달라진 고용 관계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변화된 시대에 맞춰 새롭게 적용되는 법적 판단이며 사용자단체와 노동조합의 역할, 기업이 혁신적 기업가치를 구현하는 동시에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책임과 의무를 다하도록 규제하는 시민사회의 행동 방향은 이 땅의 노동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강수돌 고려대 경영학부 교수는 추천의 말을 통해 이렇게 쓰고 있다. “미국 사례들을 다루고 있지만 한국에서도 이러한 조직적 변화들을 쉽사리 볼 수 있다. 우리 노동자들도 경제 및 기업의 조직화 방식, 미래지향적 삶의 방식에 대해 성찰적 토론을 왕성히 해 나가야 할 때다.”
김성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2015-10-1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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