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공주 나오는 동화, 현대 고통 겪는 우리를 더는 위로할 수 없기에”

“왕자·공주 나오는 동화, 현대 고통 겪는 우리를 더는 위로할 수 없기에”

김승훈 기자
입력 2015-09-08 17:48
수정 2015-09-08 18: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안데르센 동화 등 색다르게 각색한 구병모 소설집 ‘빨간 구두당’

“평소 민담, 설화, 신화 등 서사 스토리텔링을 변용하거나 재발견하는 데 관심이 많았어요. 옛날 동화들이 현대의 고통을 겪어나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고민했죠. 동화적인 상상력이 동화적인 행복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이미지 확대
고전 동화를 비틀어 ‘나쁜 동화’로 다시 쓴 소설집을 낸 구병모 작가는 “2013년 ‘창비청소년문학’ 시리즈 50권 출간 기념 소설집 ‘파란 아이’에 단편 ‘화갑소녀전’을 실은 게 계기가 돼 소설집을 묶게 됐다”며 “‘화갑소녀전’처럼 고전 동화의 재발견이 가능한 옛 동화나 서사를 모티브로 창작했다”고 말했다.  창비 제공
고전 동화를 비틀어 ‘나쁜 동화’로 다시 쓴 소설집을 낸 구병모 작가는 “2013년 ‘창비청소년문학’ 시리즈 50권 출간 기념 소설집 ‘파란 아이’에 단편 ‘화갑소녀전’을 실은 게 계기가 돼 소설집을 묶게 됐다”며 “‘화갑소녀전’처럼 고전 동화의 재발견이 가능한 옛 동화나 서사를 모티브로 창작했다”고 말했다.

창비 제공
소설가 구병모(39)가 아름다운 꿈과 희망과는 거리가 먼 ‘나쁜 동화’를 들고 나왔다.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 동화를 비틀어서 다시 쓴 소설집 ‘빨간구두당’(창비)이다. 2012년 ‘피그말리온 아이들’ 이후 3년 만에 낸 청소년 소설집이다. 출판사 측은 “구병모는 과감하고 도발적인 구성, 치밀한 문체, ‘장르소설’적 문법 구사로 청소년과 20~30대 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며 “이번 소설집은 동화의 원형을 간직하면서도 그 자체로 독창적이고 완성도 높은 서사를 구축하며 ‘구병모식 판타지’를 제대로 보여 준다”고 소개했다.

소설집엔 그림 형제 민담, 안데르센 동화 등을 다채롭게 변주한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렸다. 작가는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한 점과 억압적인 면을 묘사하는 데 동화적 스토리텔링을 변용했다. 안데르센의 ‘빨간 구두’를 모티브로 한 표제작 ‘빨간구두당’, 아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를 뒤튼 ‘화갑소녀전’, 러시아 민담 ‘커다란 순무’를 변형한 ‘카이사르의 순무’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동화나 설화를 변용할 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처지와 입장에서도 공감이 갈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민담의 주인공을 바꾸거나 여러 가지 민담 등을 한 작품에 녹여 작품화하기도 했다. ‘개구리 왕자 또는 맹목의 하인리히’는 그림 형제의 ‘개구리 왕 또는 강철의 하인리히’를 신하 하인리히의 관점에서, ‘거위지기가 본 것’은 그림 형제의 ‘거위지기 아가씨’를 거위지기 공주를 바라보는 남자 아이의 시선에서 재구성했다.

‘기슭과 노수부’는 그림 형제의 ‘세 개의 황금 머리카락을 가진 악마’ ‘괴물 새 그라이프’ 이야기와 그리스 신화, 서사시 등을 한 주제 안에 겹겹이 엮었다.

작가는 “민담이나 설화는 주인공들의 행복한 결말을 이끌어 내기 위해 규칙적인 이야기 패턴을 활용한다”며 “그 이야기 패턴에서 벗어나려고 여러 구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이 사람으로서 존재하게 하는 규칙은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동시에 사람을 경직되게 할 수도 있다”며 “동화나 민담의 서사 규칙 비틀기를 통해 현 시대의 규칙이 갖는 의미를 찾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처음엔 소재 통일을 위해 그림 형제 동화를 토대로 글을 썼다. ‘화갑소녀전’을 시작으로 집필을 이어가다 문제에 봉착했다. 그림 형제 동화에서만 소재를 취하다 보니 왕자와 공주가 계속 등장하는 현상을 피할 수 없었다. “왕자와 공주가 너무 자주 나오는 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심정적인 거리감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림 형제 동화처럼 널리 알려진 서사이면서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이 가능한 스토리텔링을 생각하다 안데르센 동화를 택하게 됐어요.”

2008년 ‘위저드 베이커리’로 제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올해 소설집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로 민음사의 ‘오늘의 작가상’과 황순원 신진문학상을 받았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2015-09-09 2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