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려니 절실했다”… 윤여정 필생의 목적은 남과 다른 연기

“먹고살려니 절실했다”… 윤여정 필생의 목적은 남과 다른 연기

하종훈 기자
하종훈 기자
입력 2021-04-26 22:12
수정 2021-04-27 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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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을 성경 삼은’ 55년 배우 인생

악녀 ‘장희빈’ 탐욕의 ‘화녀’로 초반 파격
이혼 뒤 재기, 박카스 할머니 등 변신 거듭
“어른이 다 옳진 않아” 직설에 젊은층 열광
평론가 “트렌드 상관없는 연기 통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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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예능도 접수 배우 윤여정씨는 55년간 90편 이상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다. 영화 데뷔작인 김기영 감독의 ‘화녀’(1971).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드라마·예능도 접수 배우 윤여정씨는 55년간 90편 이상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다. 영화 데뷔작인 김기영 감독의 ‘화녀’(1971).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연극 출신도, 연극영화과 전공도 아니라 열심히 대사를 외워 남한테 피해를 안 주는 게 저의 시작이었다. 나중에는 절실해야 한다는 건 알았다. 왜냐하면, 정말 먹고살려고 했기 때문에.”

영화 ‘미나리’로 한국 배우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74)씨가 밝힌 연기 철학은 거창한 포장 없이도 그의 55년 연기 인생을 설명하는 듯했다. “대본을 성경 삼아” 피해 주지 않으려고 했던 연기는 전형성을 벗어난 강렬한 작품을 향해 끊임없이 뻗어 나갔다. “필생의 목적이 무엇을 하든 다르게 하는 것”이란 말이 피부에 와닿는 이유다.

1966년 TBC 공채 탤런트로 연기 인생을 시작한 윤씨는 1971년 MBC 사극 ‘장희빈’에서 악녀 연기에 몰입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당시 시청자들의 미움을 받아 CF 모델에서 하차할 정도로 ‘욕망에 충실한 여성 캐릭터’로 각인됐다. 스크린 데뷔작도 파격이었다.

김기영 감독의 ‘화녀’(1971)에서 주인집 남자를 유혹하는 가정부 역할을 맡았고, 시체스 국제영화제와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쥐었다.

승승장구하던 윤씨는 1974년 가수 조영남과 결혼 후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이혼하고 1984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혼녀를 곱게 보지 않던 분위기 속 주어진 역할은 많지 않았다. 최근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도 “이혼녀라 TV에 나와선 안 된다던 게 그때 분위기였다”고 고백할 만큼 어려운 시절이 닥쳤다.
드라마·예능도 접수 배우 윤여정씨는 55년간 90편 이상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다.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1995).
드라마·예능도 접수 배우 윤여정씨는 55년간 90편 이상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다.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1995).
두 아들을 키우고자 닥치는 대로 일했던 그는 김수현 작가와의 인연으로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1991)와 ‘목욕탕집 남자들’(1995) 등에 출연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윤씨가 ‘사랑이 뭐길래’에서 전화를 받으며 “홍은동입니다~”라고 말하는 대사는 유행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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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예능도 접수 배우 윤여정씨는 55년간 90편 이상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다. 영화 ‘여배우들’(2009).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드라마·예능도 접수 배우 윤여정씨는 55년간 90편 이상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다. 영화 ‘여배우들’(2009).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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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예능도 접수 배우 윤여정씨는 55년간 90편 이상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다. ‘바람난 가족’(2003).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드라마·예능도 접수 배우 윤여정씨는 55년간 90편 이상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다. ‘바람난 가족’(2003).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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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예능도 접수 배우 윤여정씨는 55년간 90편 이상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다. ‘죽여주는 여자’(2016).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드라마·예능도 접수 배우 윤여정씨는 55년간 90편 이상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다. ‘죽여주는 여자’(2016).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스크린으로 돌아온 윤씨는 파격적인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2003)에서 투병 중인 남편을 두고 공개적으로 불륜을 선언하는 시어머니였고, ‘돈의 맛’(2012)에서는 재벌 집안의 탐욕스러운 안주인이었다. 이재용 감독의 ‘죽여주는 여자’(2016)에선 가난한 노인들을 상대하는 ‘박카스 할머니’를 맡아 우리 사회의 그늘을 직설적 화법으로 꼬집었다.

AFP통신이 “이날 영예를 안긴 영화 ‘미나리’에서 맡은 할머니 역할은 그간 경력을 볼 때 상대적으로 평범했다”고 한 평가도 그래서 틀린 말이 아니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42관왕에 오른 윤씨는 ‘미나리’에서 적극적으로 자신만의 ‘순자’ 캐릭터를 구축했다. 딸을 위해 미국에 온 순자는 여느 미국 할머니들처럼 쿠키를 구워 주는 대신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화투를 가르치고, 고약한 말을 서슴없이 던진다. 손주 데이비드(앨런 김 분)가 “할머니는 진짜 할머니 같지 않아요”라고 외치는 대사가 그만의 순자를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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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예능도 접수 배우 윤여정씨는 55년간 90편 이상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다. tvN 예능 ‘윤스테이’(2021). tvN 제공
드라마·예능도 접수 배우 윤여정씨는 55년간 90편 이상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다. tvN 예능 ‘윤스테이’(2021).
tvN 제공
윤여정이 빛나는 이유는 연기력뿐 아니라 인간적 매력과 유쾌하고 직설적인 언변도 한몫한다. 김초희 감독의 독립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2019)에 개런티를 받지 않고 출연했듯, 작은 작품이라도 미더운 후배의 작품에는 기꺼이 동참한다.

2009년 MBC 무릎팍도사에서 “나는 배고파서 연기했는데 남들은 극찬하더라. 배우는 돈이 필요할 때 연기를 가장 잘한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어른이라고 해서 꼭 배울 게 있느냐?”(2018년 SBS ‘집사부일체’)고 젊은층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이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윤씨는 트렌드와 상관없이 살았던 여배우”라며 “이번 수상은 한국어를 펼치는 한국의 전형적 할머니 연기가 정서적 감동을 줬다는 데서 한국 배우들의 아카데미 진출에 청신호가 됐다”고 평가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2021-04-27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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