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중반 조혼에 원치 않은 임신…남수단 여성들의 고단한 삶

10대중반 조혼에 원치 않은 임신…남수단 여성들의 고단한 삶

입력 2016-03-07 09:28
수정 2016-03-07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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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기회 없어 빈곤 악순환…“여성 교육 중요성 인식 필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남수단. 이곳에서 초등학교에 가는 아이는 전체의 25%에 불과하다. 중학교는 더 심각해 10%밖에 안 된다.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은 주로 가축을 돌보거나 가사를 돕는다. 문해율은 27%에 불과하다. 70% 이상이 평생 ‘까막눈’으로 사는 셈이다.

여성의 삶은 더욱 비참하다. 아프리카 전체에 퍼진 조혼 풍습 탓에 14∼15살에 결혼하고 나면 교육은 꿈도 꾸지 못한다. 출산과 노동력의 대가로 신랑이 ‘신부대(지참금)’를 처가에 지불하면 신부는 신랑의 ‘소유물’이다.

지난달 24일 오전 기자가 찾은 남수단 수도 주바의 구기 커뮤니티(남수단의 최하위 지역단위, 우리나라로 따지면 ‘읍·면·동’에 해당). 우리나라라면 아이들이 학교에 가야 할 시간이지만 언뜻 봐도 초등학생 정도밖에 안 되는 아이들이 갓난아기를 안고 울음을 달래고 있었다.

돌산으로 이뤄진 이 커뮤니티 안에는 움막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신발은커녕 옷도 제대로 입지 않은 아이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이곳에서 만난 디아나 마오르(17·여)는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덜컥 임신을 해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8개월 된 딸을 안은 마오르는 눈물을 글썽이며 “졸업하고 싶었는데 아이를 갖는 바람에 공부를 다하지 못했다”며 “어서 학교로 돌아가 공부를 마쳐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남수단 현지사무소 관계자는 “피임법이 따로 없고 낙태도 불가능해서 이른 나이에 아이를 가지고 결혼을 하거나 원치 않는 임신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유엔산하 아동구호기관인 유니세프는 최근 발표한 ‘아프리카 조혼 실태 보고서’에서 아프리카 소녀들은 관례에 따라 가족의 빚을 갚으려고 결혼을 하지만 이들의 삶은 가난과 남편의 폭력, 에이즈 바이러스(HIV)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들은 특히 고학년이 될수록 학교에서 중도탈락하는 비율이 높아진다. 이는 빈곤의 악순환을 낳는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운영하는 구기 초등학교에 다니는 로즈 미날라(18·여)양은 14살이던 2012년 임신해 학업을 중단했다가 아이가 숨지는 바람에 올해 학교로 돌아왔다.

미날라는 “아이가 태어난 지 1년후 죽은 다음 작년 내내 가족을 설득해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다”며 “나와 같은 처지의 친구들이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걸 보면 나는 매우 운이 좋은 편”이라고 털어놨다.

생리용품이 없어 학업을 중단하는 여학생도 많다.

김현석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남수단 국가사무소장은 “이곳에는 생리대라는 개념이 없어서 여학생들이 생리를 시작하면 부끄러움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는 경우가 꽤 많다”고 전했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비정부기구(NGO)가 여성 교육뿐 아니라 생리용품 보급에도 힘을 쏟는 것도 이 때문이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최근 개소한 보르의 직업훈련센터 재봉교실에서 면 생리대부터 생산할 계획이다.

김 소장은 “조혼률이 높은 곳에서 젊은 여성을 교육하는 것은 그들의 아이까지 이어지기에 훨씬 중요하다”며 “이곳 여성의 문해율을 높이는 동시에 자립까지 돕는 데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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