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현대사 뒤바꾼 탈레반 ‘애꾸눈’ 지도자 오마르

아프간 현대사 뒤바꾼 탈레반 ‘애꾸눈’ 지도자 오마르

입력 2015-07-29 20:54
수정 2015-07-29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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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2001년 아프간 장악한 이슬람 원리주의자

29일 영국 BBC방송 등이 사망설을 보도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지도자 물라 무하마드 오마르는 여느 중동 테러조직 지도자와 마찬가지로 개인 신상이 그렇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태어난 해도 1960년 안팎으로 알려질 정도로 정확하지 않다. 그가 보도대로 2∼3년 전 죽었다면 50대 초중반에 생을 마감한 셈이다.

그러나 그가 아프간에서 남긴 자취는 매우 뚜렷하다.

오마르가 탈레반(학생)이라는 무장조직을 결성한 계기는 1989년 소련이 아프간에서 철수한 뒤 유지되던 사회주의 성향의 군벌 나지불라 정권이 붕괴하면서다.

아프간은 여러 군벌로 나뉘어 사실상 내전으로 빠져들었다.

파키스탄과 가까운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 출생인 오마르는 아프간을 통일해 이슬람 초기의 교리로 통치한다는 명분으로 1994년께 30여명을 규합해 탈레반을 결성했다.

’탈레반’이라는 조직명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지독한 이슬람 원리주의자였다.

그가 1996년 9월 수도 카불을 점령해 건국한 ‘아프간 이슬람에미리트(IEA)’ 초기엔 예언자 모하마드가 풀뿌리로 양치했다며 치약 사용도 금지했을 정도였다.

오마르는 탈레반 결성 초기엔 다소 무모하기까지 했던 칸다하르의 군소 무장조직의 수괴였지만 불굴의 전투력과 야전성은 상대를 떨게 하기 충분했다.

오마르는 탈레반 결성 전부터 이슬람주의 무장조직(무자히딘)에서 잔뼈가 굵었는데 1980년대 중반 소련군과 전투에서 잃은 오른쪽 눈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러던 그가 아프간을 통일할 수 있었던 데는 당시 아프간을 관통하는 무역로가 필요했던 베나지르 부토 당시 파키스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뒷받침됐다.

부토 정부는 카불이 아닌 탈레반의 영향권인 칸다하르를 경유하는 무역로가 가장 효과적으로 보고 탈레반에 무기를 쏟아 부었다.

이에 힘입어 오마르의 탈레반은 1994년 11월 칸다하르를 완전히 점령한 것을 신호탄으로 아프간 남부를 급속히 장악, 카불로 향했다.

1996년 9월 순식간에 카불을 손에 넣은 탈레반은 이슬람주의 국가 IEA를 건국해 오마르를 국가수반으로 세운다. 아프간의 다수 부족인 파슈툰족 출신이라는 점도 그가 정권을 쉽게 잡을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

오마르가 카불로 진격하기 다섯달 전인 1996년 4월 오마르는 칸다하르의 가장 높은 건물에 올라가 예언자 모하마드가 입었다고 전해진 외투를 걸침으로써 자신이 이슬람의 적통임을 과시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칸다하르의 성소인 크라카샤리프 사원에 보관됐던 이 외투를 입는 사람은 칼리파(이슬람 초기의 신정일치 지도자)가 된다는 전설이 있다.

그의 신정일치 국가의 꿈은 2001년 9·11 테러 뒤 미국이 벌인 아프간 전쟁으로 막을 내렸다. 친구이자 경쟁자인 오사마 빈 라덴을 보호한 혹독한 대가였다.

결성 초기 파키스탄을 통한 미국의 간접 지원으로 세력을 급속히 확장했던 탈레반은 17년만에 미국에 의해 퇴출된 것이다.

이후 오마르는 외부에 모습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고 종종 사망설이 돌기도 했다. 미국은 오마르에 대해 1천만 달러(약 116억원)의 현상금을 걸어 놓은 상태다.

현재 남아있는 그의 사진은 1990년대 초의 모습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집요하게 그를 추적했지만 파키스탄정보부(ISI)의 비호를 받아 파키스탄 카라치에 은거하고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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