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하고 예의바른 학생서 ‘세기의 지명수배자’ 표변
영국의 중산층 가정 출신인 ‘지하디 존’은 학창 시절 성실하고 예의바른 학생이었지만 정부 당국에서 받은 ‘부당한 대우’로 급진주의자로 변모했다는 주장이 나왔다.26일(현지시간) 영국 텔레그래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영국 인권단체 케이지(CAGE)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하디 존’으로 알려진 무함마드 엠와지(26)와 주고 받은 이메일을 공개하고 영국 정부가 엠와지를 극단주의로 내몰았다고 주장했다.
케이지는 ‘테러와의 전쟁’으로 타격 받는 공동체를 지원하는 단체로 엠와지는 2009년 경찰 조사 당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며 케이지에 처음 연락을 해왔다.
엠와지는 1988년 쿠웨이트에서 태어나 6살에 가족과 함께 영국 런던으로 이주해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사는 노팅힐과 접한 웨스트런던의 부촌에 자리잡았다.
그가 다녔던 런던 북부의 인기있고 유명한 중학교의 한 동창은 엠와지를 축구를 좋아하는 친절한 학생으로 기억했다. 그는 “좋은 녀석으로 보였다. 자신감이 있었지만 으스대지는 않았고 겸손했다. 모든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고 말했다.
당시 한 교사도 엠와지가 성실하고 책임감 있으며 “무슨 일을 하든 언제나 옳은 길을 찾는 아이였고 폭력의 기미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대학 졸업 즈음에도 그는 ‘옷 잘입는 예의 바른 젊은이’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았다. 수염을 기르는가 하면 여자와 눈을 마주치는 것을 꺼리는 등 이슬람 교리에도 충실했다.
이런 그가 급격히 변한 계기가 된 것은 2009년 8월 대학 졸업 후 친구 두 명과 함께 한 탄자니아 여행이었다. 엠와지는 동부 아프리카에 사파리 여행을 가려 했다고 주장했지만, 영국 정보당국(MI5)은 불온한 의도가 있었다고 확신했다.
MI5 요청에 따라 엠와지 일행은 탄자니아 다르에스 살람 공항에서 경찰에 붙잡혔고, 바로 다음날 그들이 입국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돌려보내졌다.
그곳에서 소말리아 알카에다 연계 단체인 알샤바브에 합류하려 한 혐의로 MI5의 조사를 받은 그는 그들이 자신을 정보원으로 영입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영입 제안을 거절하자 그들은 “인생이 고달파 질 것”이라며 “런던에서 다시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엠와지는 이후 영국에 도착해서도 다시 대테러 기관의 조사를 받았다. 그들은 9·11 테러와 아프가티스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케이지의 아심 쿠레시 조사국장은 당시 엠와지가 당국의 대우에 매우 화가 나 있었다고 전했다.
같은 해 9월 약혼녀가 있는 고향 쿠웨이트로 가 IT 회사에 취직해 살다가 2010년 5월 가족 방문을 위해 영국을 찾았을 때 공항에서 지문을 채취하고 소지품 검사를 받기는 했지만 8일 뒤 무사히 쿠웨이트로 돌아갔다.
하지만 7월 다시 런던에 왔을 때는 더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조사관은 가방을 뒤져 쿠란을 꺼내 바닥에 내려놨다. 쿠란을 의자 위에 올려달라는 그의 요구에 공격적으로 대응했다.
엠와지는 쿠웨이트 비자 갱신 거부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자 “직업을 구했고 곧 결혼하게 됐지만 런던에서 수감자가 된 것 같다”며 영국 정부를 비난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엠와지가 자신의 어려움을 세상과 연결시켜 보기 시작했다고 케이지는 전했다.
영국 보안당국이 엠와지를 요주의 인물 명단에 올린 것도 이 즈음이다.
재판 기록에 따르면 엠와지는 2012년까지 지역 극단주의 단체인 ‘런던 보이즈’의 일원이었다. 당국은 엠와지가 같은 동네에서 자라 알샤바브의 지도자가 된 알베르자위와도 연관성이 있다고 봤다.
엠와지는 2012년 케이지에서 영어 교사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수 차례 면접을 봤지만 거부당했다. 아들이 쿠웨이트에서 새 삶을 살기를 원했던 아버지의 충고에 따라 2013년 초 이름을 바꾸기도 했지만 엠와지는 쿠웨이트로 돌아가는 데 실패했고, 결국 3주 뒤 종적을 감췄다.
그의 부모는 실종 신고를 했고 4개월 뒤 찾아온 경찰은 그가 시리아에 있다고 통보했다.
케이지 쿠레시 국장은 엠와지의 극단적 행동을 비난하면서도 엠와지가 경찰에게 두들겨 맞고 목졸림을 당하는 등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며 “그는 제도를 이용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바꾸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제도는 결국 그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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