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소멸 위기 극복 위한 ‘광역 통합’
주민투표 건의, 시도 통합 특례법 등
정부가 지방분권 구체적 방안 내놓길
하혜수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중앙정부의 반응은 싸늘하다. 정치적 계산을 앞세운 일회성 쇼라는 시선마저 없지 않다. 여태껏 국내 성공 사례가 없으니 진정성을 의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해외에서도 기초단체끼리 통합한 사례는 여럿 있으나 광역단체 간 통합은 프랑스 레지옹을 제외하면 사례를 찾기 어렵다. 일본은 2003년 47개 도도부현을 통합해 도주(道州)로 개편하는 담대한 구상을 밝혔으나 후속 조치가 없었고, 오사카 부·시가 행정 통합을 위해 2015년과 2020년 두 차례 주민투표에 부쳤지만 근소한 차이로 실패했다.
선례가 없다고 단념하기는 이르다. 지금부터 성공 사례를 만들면 된다. 광역 통합의 첫 번째 성공 조건은 주민이 공감할 만한 선명한 효과를 제시하는 것이다. 대개 광역 통합의 효과로 효율성과 ‘규모의 경제’를 강조하나 이는 기구·정원과 재정력 감축으로 읽힐 수 있다. 광역 통합의 최대 효과는 지방분권과 일자리 확대에 있다. 하나로 합쳐진 지방정부에 권한과 재원을 더 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다. 또한 지방분권(기업규제권의 이양)은 다국적기업을 유인해 일자리 확대에 기여한다. 그에 따라 광역 통합은 지방소멸을 막을 수 있다. 지방정부의 역량이 커지고 일자리가 늘어나면 청년층이 머무는 활력 넘치는 지역으로 거듭날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조건은 시도의 의견 차를 좁히는 것이다. 시도지사는 숙의 공론화를 통해 명칭, 신청사, 상생발전 이슈를 정리해야 한다. 명칭은 지방자치법에 근거할 때 특별자치도와 특별광역시가 유력하다. 특별자치도는 광역시의 지위 하락과 그에 따른 자치구 폐지가 예상되기 때문에 주민의 수용을 얻기 어렵다. 특별광역시는 도를 폐지하고 그 밑에 시를 둬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이는 제도 개편으로 해결할 수 있다. 신청사는 추가 건설 비용과 입지 갈등을 고려할 때 기존의 2~3개 복수 청사를 검토할 수 있다. 상생발전은 농촌발전기금 조성, 조세 및 재정조정제도 개편을 통해 풀어야 한다.
마지막 조건은 중앙정부의 선제적 결단이다. 중앙정부는 주민투표 건의, 행재정 특례 부여, 법률 제정을 통해 광역 통합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 주민투표는 행정안전부 장관이 시도지사에게 건의해야 한다. 그래야 시도지사가 통합 찬반 주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행재정 특례 수준이 중요한 것은 시도민들이 주민투표에서 통합의 장단점, 행정 권한 이양, 재정특례를 꼼꼼히 따져 보기 때문이다. 법률 제정의 위력은 광역 통합이 법적 절차에 따라 진행되고 지방정부 창설법의 제정으로 마무리된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그런데 아직 광역 통합에 관한 절차법이 없으므로 중앙정부는 ‘시도 통합 절차 및 특례법’부터 제정해야 한다.
광역 통합은 시도 합의, 주민투표, 법률 제정의 세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중앙이 주도하면 첫걸음도 떼지 못하고, 지방이 주도하면 최종 관문을 넘기 어렵다. 그래서 ‘지방 주연, 중앙 조연’의 찰진 호흡이 필요하다. 지방이 통합을 주도하면 중앙은 두툼한 특례로 화답해야 한다. 대구·경북과 광주·전남의 행정 통합에 대해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분권’을 천명했던 문재인 정부는 시종 침묵했다. 부산·경남의 행정 통합에 대해 윤석열 정부는 어떤 반응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제 중앙이 화답해야 할 때다.
2023-04-18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