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170조 투입해도 지방소멸 가속
대기업 유인해 AI 신산업 거점 만들고
시도 통합으로 다국적기업 불러들이길
하혜수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우리는 얼추 20년 동안 크게 바뀌지 않은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펴왔다. 2005년부터 지금까지 170조원가량의 예산을 투입했고, 세종시와 혁신도시도 건설했다. 지난해부터는 소멸 위험 지역에 매년 1조원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수도권 쏠림은 점점 더 심해지고, 지방소멸은 더 빨라지고 있다. 인구의 50.5%(2022년)와 지역총생산의 52.8%(2021년)가 수도권에 쏠려 있고, 초저출산율 0.78(2022년)의 결과로 전국 226개 기초단체 가운데 113개(2022년)가 소멸 위험에 처해 있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만 한다. 2005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토머스 셸링은 ‘미시 동기와 거시 행동’에서 거시적 사회현상은 개인의 작은 동기와 선택이 빚어낸 결과라고 했다. 수도권 쏠림과 지방소멸도 수도권을 향한 개인의 작은 동기를 지방으로 되돌리면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개인의 동기를 바꾸는 쪽으로 틀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경제 수도’에 준하는 신산업 거점 형성 전략이다. 남부 3개 권역(광주전남, 대구경북, 부울경)에 인공지능(AI)과 로봇으로 대표되는 신산업 거점을 만들어 수도권에 버금가는 일자리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문제는 신산업 거점의 내용물이다. 신산업 거점은 국가의 막대한 재정 지원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이 들어가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대기업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부자 감세 논리에 갇혀 있는 상속세를 손질해야 한다. 대기업은 구인난을 이유로 지방 이동에 난색을 표하지만 세계 최고 세율인 상속세를 감면하면 태도를 바꿀 것이다. 지방에서 20~30년 지역 발전에 기여하는 대기업에는 상속세를 대폭 감면해 주는 결단이 절실하다.
시도 통합과 같은 특단의 대책도 필요하다. 세계화 시대에는 다국적기업이 국가 번영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다국적기업의 이동 동기를 자극하기 위해서는 국제적 소비시장을 만들고 기업 규제 권한을 지방에 넘겨야 한다. 이를 위해 시도 경계를 새로 긋는 극약 처방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시도 통합으로 자치 구역이 인구 500만명 내외로 재편되면 매력적인 소비시장과 국제공항·항만이 형성돼 다국적기업이 관심을 보일 것이다. 또한 시도 통합으로 자치 역량이 강화되면 기업 규제 권한이 지방으로 이양될 것이다. 이러한 규제 권한의 지방 이양은 다국적기업의 이동을 촉진할 수 있다.
지방 권역 내 도시와 농촌의 상생 전략도 서둘러야 할 시점이다. 지방 권역 내에서도 도농 간 격차가 극심하고, 대다수 농촌이 인구소멸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4도 3촌(4일은 도시, 3일은 농촌 거주)의 생활 패턴을 고려한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인구감소지역지원법에 명시된 ‘생활인구’(거주자·통근·통학·의료·관광 인구 포함)를 주택 및 조세와 연계할 필요가 있다. 농촌 지역의 세컨드하우스를 다주택에서 제외하고, 부거주지에 대한 지방세 징수를 허용해야 한다. 독일은 복수 주소제를 도입하면서 부거주세(주택 임대료의 5~10%)를 인정하고 있다.
정책의 틀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득권자들은 어렵사리 형성된 균형을 깨뜨리기 싫어한다. 정부도 크게 무리하지 않으면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다. 그래도 약효 없는 정책을 연명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자 국민 혈세를 축내는 일이다. 오늘의 지방이 내일의 국가 모습이다. 정책의 기본 틀을 바꾸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2023-03-08 2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