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창업가의 ‘냉장고를 부탁해’/이건호 에이빅파트너스 대표

[열린세상] 창업가의 ‘냉장고를 부탁해’/이건호 에이빅파트너스 대표

입력 2022-05-03 20:34
수정 2022-05-04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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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창업가는 계획보다 수단에 집중
완벽한 사업계획서보다 현장 업무 중요
실전형 사고방식의 훈련 도구와 場 필요

이건호 에이빅파트너스 대표
이건호 에이빅파트너스 대표
요리를 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레시피에 따라 필요한 재료를 장만해 음식을 만드는 것이 첫 번째다. 두 번째는 유명 예능 프로그램처럼 냉장고 안에 있는 재료를 가지고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전자를 선호할 것이다. 목표가 명확하고 수행해야 할 일들이 정해져 있어 비효율이 최소화된다. 반면 후자는 어떤 요리가 나올지 불확실하고, 또 시행착오를 겪으니 낭비도 많다.

‘창업’ 세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창업가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해 마치 요리 레시피와 같은 훌륭한 사업계획서를 작성한다. 그리고 사업자금 유치를 위해 투자자들에게 부단히 ‘영업’한다.

그러나 미국 버지니아대학의 사라스바시 교수의 실증적 연구에 따르면 최소 1~2건의 창업에 성공한 ‘전문적 창업가’들의 방식은 다르다. 일단 그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현재 가진 수단을 활용해 사업 아이디어를 구상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프로토타입을 보여 주고, 의견을 열심히 듣는다.

이런 그들의 열정과 아이디어에 동감하는 이들이 사업 파트너로 합류하게 되면 다시 새로운 가용 수단이 생기고, 이것은 또 기존 아이디어를 더욱 충실하게 만들어 준다. 다시 말해 그들은 ‘지금 여기’에서 자신이 직접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들에만 초점을 맞춘 채 유동적 목표를 쫓아간다.

에어비앤비도 그런 식으로 만들어졌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유명한 콘퍼런스가 열리는 기간에 숙소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된 두 친구는 생활비를 조금 더 벌어 보려는 요량으로 자기 집 거실을 숙박용으로 빌려주겠다고 블로그에 올렸다.

자신들이 가진 수단, 즉 거실이라는 공간 그리고 블로그 등을 가지고 “현재 내 수중에 있는 것들로 나는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창업을 한 것이다. 그다음엔 잘 알다시피 갖고 있는 호텔이 하나도 없으면서 세계에서 가장 크고도 촘촘한 숙박 네트워크로 성장했다.

이렇듯 성공적인 창업가들이 즐겨 하는 사고방식은 우리의 예상과 달리 매우 간단하다. 비유하자면 안개 낀 개울을 건널 때 복잡한 설계도를 만들어서 튼튼한 다리를 건설하려 하기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적당한 장소에 자신의 힘으로 움직일 수 있는 돌덩이 하나를 놓는다. 그리고 그 돌 위에 올라서서 다음 돌 놓을 자리를 찾는 식이다. 다음 돌은 주변에 있는 동료들의 도움으로 하나씩 놓아 간다. 즉 가진 것으로 시작하고, 다른 이들로부터 도움을 얻어 내고, 개인의 목표를 공동의 목표로 진화시키고, 성장하고, 탄력을 얻는 것이다.

‘창업가 정신의 전도사’라 불리는 칼 슈람 시러큐스대 교수도 “사업계획서가 창업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실전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대신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사업계획서를 버리고 현장에서 실질적인 업무를 통해 역량과 인맥을 쌓아 가면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냉장고를 부탁해’형 사고방식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여전히 레시피를 따라 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래서 창업 지원 기관들도 사업계획서를 잘 만들고, 투자자에게 발표 잘하는 방법에 대한 교육과 훈련에 많은 투자를 한다. 그러나 진정한 창업가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지금 있는 재료만으로도 먹을 만한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실전형 ‘창업가 사고방식’을 연습시킬 도구와 장(場)의 도입이 매우 시급해 보인다.
2022-05-0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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