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청소년을 法파라치로부터 지키자/이호열 고려대 언론대학원 AMP 주임교수

[열린세상] 청소년을 法파라치로부터 지키자/이호열 고려대 언론대학원 AMP 주임교수

입력 2015-08-24 18:08
수정 2015-08-24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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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열 고려대 언론대학원 AMP 주임교수
이호열 고려대 언론대학원 AMP 주임교수
유니세프가 세계 29개국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학업 스트레스가 최고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학업 스트레스 지수는 50.5%로 청소년 두 명 중 한 명 정도는 공부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에는 새로운 유형의 스트레스가 등장한바 일부 로펌이 청소년들에게 저작권 침해에 따른 처벌을 고지하는 내용 증명이나 이메일을 보내 겁을 주고 합의금을 내도록 유도하고 있다. 2007년 11월 15일에는 실제로 학업에 몰두해야 할 전남 담양의 한 고등학생이 인터넷에서 소설을 내려받은 행위에 대한 합의금을 마련하려고 고민하다 목을 매 자살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1957년에 제정된 우리나라 저작권법은 권리침해 구제 방법과 관련해서는 저작권자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친고죄가 원칙이었으나 2006년 저작권법 개정에서 일부 저작권 침해행위가 비친고죄로 변경되면서 저작권자가 아닌 제3자, 즉 합의금을 노리는 자들의 형사고발이 남용되고 있는 것이다. 현행 저작권법 제140조는 영리를 목적으로 또는 상습적으로 복제, 공연, 공중송신, 전시, 배포, 대여, 2차적 저작물 작성 등의 방법으로 저작재산권을 침해한 경우를 비친고죄로 규정하고 있다.

종래 저작권법이 친고죄를 원칙으로 했던 것은 저작권의 인격적 성격을 고려한 측면도 있지만 대부분의 침해행위는 개인적 또는 사적 이용을 위해 일회적으로 행해진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었다.

그러나 저작권이 산업화되고 침해행위도 반복적, 조직적으로 행해지는 경우가 많아짐에 따라 비친고죄의 적용 범위를 확대하게 됐고, 2007년 4월에 타결된 ‘한·미 FTA 협정 제18.10조 제27항 바호’에서도 ‘고의에 의한 상업적 규모의 저작재산권 침해에 대하여는 형사 처벌과 관련하여 당사국은 권리자 기타 관계자의 고소 또는 고발 없이도 직권으로 형사절차를 개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저작권법 제140조를 친고죄로 개정하지 않는 한 본 조항은 우리의 청소년들을 포함해 수많은 저작권 이용자들을 법파라치들의 먹잇감이 되게 하는 민생 악법임을 직시해야 한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13년 저작권법 위반 사건 접수는 2만 6440건으로 그중 학생에 대한 고소 건수도 1257건에 이른다고 한다. 일부 로펌들은 아르바이트생을 대거 고용해 조금이라도 침해의 의심이 있는 이용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이메일을 발송한 뒤 정해진 가격에 합의를 요구하고 합의를 하지 않을 경우 전과자로 만들겠다며 협박을 가해 폭리를 취해 왔다.

당시 알려진 합의금 가격표는 청소년 50만~80만원, 대학생 80만원, 성인 100만원 정도였다. 저작권법 제140조 비친고죄 조항은 저작권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저작물 이용자들을 예비 범죄자로 규정할 소지가 있어 형벌권의 남용을 초래하고 있다.

법파라치들과 일부 로펌들이 저작권자로부터 제대로 위임도 받지 않고, 저작권 위반 사례를 마구 뒤져 저작권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은 청소년들을 무차별적으로 고소, 고발하겠다고 협박을 한 후 합의금을 받아 내는 장사를 해오고 있는 현실을 좌시해선 안 된다.

일반 범법 행위와 달리 저작권의 경우 권리를 침해당한 피해자는 손해배상만 받으면 처벌을 원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바 저작권자의 의사에 반해 수사가 이루어지거나 제3자의 고발권을 인정하는 것은 저작권 제도의 의의나 저작권의 인격권적 성격에도 부합하지 아니한다.

문화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저작권자가 창작물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게 하는 것이 우선이지 정부와 수사기관이 일부 로펌과 저작권자들의 합의금 장사에 이용되는 현실을 방치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지 아니하거나 피해가 매우 경미함에도 수많은 청소년을 예비 전과자로 낙인찍는 일은 없어야 한다. 중범죄는 저작권 침해 금액이 180일 이내 2500달러, 경범죄는 1000달러 이상인 경우에만 형사처벌할 수 있는 미국의 경우를 참고해 볼 필요가 있다.
2015-08-2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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