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당신은 누구와 밥을 먹는가/강순주 건국대 건축학부 교수

[열린세상] 당신은 누구와 밥을 먹는가/강순주 건국대 건축학부 교수

입력 2014-12-04 00:00
수정 2014-1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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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주 건국대 건축학부 교수
강순주 건국대 건축학부 교수
여성의 사회 진출과 1인 가구의 증가로 가정에서 식사하는 비율이 예전 같지 않다. 식생활 문화가 다양해지면서 소위 ‘혼밥’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하고 있으며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실로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하는 비율은 급속히 줄어드는 추세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의하면 지난해 주중 이틀 이상 가족과 저녁을 먹는 사람의 비율은 64% 수준이었으며, 그중 20대는 45.1%로 가장 낮았다.

예전에는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어머니가 해주는 집밥을 먹고 예절을 지키며 식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밥을 먹는 것도 쉽지 않게 됐다. 그마저 다양한 대체 식품을 구입하기도 하고, 아니면 외식으로 해결하기도 한다. 일견, 오늘날은 식사에 대한 자유로운 선택이 많아져 이상적인 식생활 문화가 펼쳐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연구들에서는 가족과 함께하는 공식(共食)공동체가 부활돼야 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 연구진은 만 3세 어린아이가 식탁에서 가족과 함께 식사하며 배우는 어휘력이 책을 읽을 때보다 10배 많다고 발표했다. 컬럼비아대학 연구진도 가족 식사를 많이 하는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A학점 받는 비율이 2배 높고, 비행에 빠질 확률은 50% 감소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연구에서는 가족과의 식사 횟수가 많을수록 식습관이 좋아지고 매사에 긍정적이며 감정적으로도 안정된다는 발표가 있었다. 밥을 가족과 함께 먹는 건 분명 인성이나 학습에 영향을 주는 게 확실하다.

가족이 해체되고 가족의 수만큼 가족의 형태가 존재하는 오늘날 반드시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만이 공식(共食)공동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웃, 친구, 동료 등 다양한 대상이 있다. 지난해 1월부터 올해 11월까지 집밥 관련 약 11만건의 소셜 버즈(Social Buzz)를 분석한 결과 집밥 관련 내용이 지난해보다 48%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집밥이 개인사가 아닌 집단의 관심사로 부각됐음을 짐작하게 한다. 외식업계 창업 트렌드 1순위 중 하나도 ‘집밥 콘셉트’라는 결과도 있으니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소박하면서도 질리지 않는 끼니를 추구하고픈 현대인의 필요성을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러한 집밥을 그리워하는 낯선 사람들이 함께 만나 밥을 먹는 ‘소셜다이닝’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것 또한 새로운 공식(共食)공동체의 등장이다. 소셜다이닝은 고대 그리스의 식사 문화인 ‘심포지온’에서 비롯된 것으로 식사를 매개로 하여 모르는 사람과도 공통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교류하는 것을 뜻한다. 최근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주목받는 트렌드다.

생각해 보면 역설적이다. 인간이 가장 행복을 느끼는 것은 좋아하는 사람과 식사를 할 때인데, 더 좋은 삶을 살겠다고 맞벌이를 하는 등 바쁘게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정작 식사의 질은 낮아지고 있으니 말이다. 집밥의 느낌이 나는 식사를 사 먹는 게 대부분 직장인들의 열망이 됐고, 그 열망을 쉽게 충족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돈이 있어도 조미료나 농약으로부터 깨끗하고 어머니 손맛처럼 몸으로 전해지는 편하며 영양가 있는 음식을 사 먹는 게 어렵다. 자의든 타의든 가족들과의 식사가 어려워 가정 내에서도 나 홀로 식사가 일상화되고 인간 관계가 축소되고 있는 요즈음이야말로 함께하는 식사를 통해 본질적 행복감을 다시금 느껴야 한다. 식사는 공복을 채우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시간이다. 거기서 얻는 정과 유대감은 가족 관계뿐 아니라 사회적 문화와 환경과의 관계 형성으로까지 이어진다.

굳이 전통적 의미의 가족이 아니더라도 행복한 끼니를 함께하는 공동체들이 더 늘어나고, 안심하고 신선한 음식을 즐기는 데 관심을 갖는 건 사회적으로도 좋은 파장을 가져올 수 있다. 외식 산업의 트렌드가 바뀌고, 식량 자급률을 높이며,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면서 농업과 식탁을 연결시키는 로컬 푸드 운동이 활성화될 것이다. 인간과 흙을 위협하는 농약과 비료의 사용도 줄여 갈 수 있다. 공식(共食)공동체의 부활과 진화를 기대한다.
2014-12-0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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