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열린세상]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입력 2014-09-05 00:00
수정 2014-09-05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14
지난여름 무더위가 한창일 때 2주가량 공적인 일로 외부와 철저하게 차단된 생활을 했다. 휴대전화도 인터넷도 전혀 쓸 수 없는 상황에서 큰 방에 홀로 기거를 하면서, 정해진 일정에 따라 주어진 일을 진행하느라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모든 일이 완료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가슴 한구석이 텅 빈 느낌을 받았다.

이미지 확대
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그 며칠 동안 나는 이가림의 시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를 계속 떠올렸다.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모래알 같은 이름 하나 불러 본다/기어이 끊어낼 수 없는 죄의 탯줄을/깊은 땅에 묻고 돌아선 날의/막막한 벌판 끝에 열리는 밤/내가 일천 번도 더 입 맞춘 별이 있음을/지상의 사람들은 모르리라’라는 시구가 그렇게 가슴에 와 닿았다. 이 시는 사랑하는 이를 깊은 땅에 묻고 돌아오는 날 밤, ‘나’가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자신을 스쳐간 수많은 모래알 같은 이름을 불러보면서 인연의 소중함을 떠올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시를 읽으면서 나는 며칠 밤을 심한 가슴앓이를 해야만 했다.

누군가를 가슴 아프게 했던 일, 혹은 누군가와 다투었던 일, 또 무엇인가 소홀히 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모래알 같은 이름’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나’라는 존재는 홀로 이 세상에 던져진 것이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음으로 해서 내 삶이 결코 외롭고 고독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다면 나에게 인연의 끈을 허락해 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그들과의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그 어떤 이해타산적인 측면을 개입시키지 않고 진심을 다하리라 다짐을 했다.

그런 결심을 한 지 한 달이 지났는데, 그때의 각오를 지금 충실히 실천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그동안 소원했던 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가끔 그때의 다짐을 떠올리면서 마음속으로나마 사랑하는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긴 한다. 또 학생들에게 공부 안 한다고 화를 내고 윽박지르기보다는 열심히 하라고 용기를 북돋워주려 한다. 학생들 발표문을 집어던지면서 불같이 화를 내던 평소의 나답지 않은 모습을 본 때문인지 학생들은 나의 그런 행동에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추석 연휴를 맞아 학생들에게 “봄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라는 김소월의 시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를 가르친다. 밤마다 돋는 달처럼 임이 늘 내 가까이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몰랐는데, 임과 ‘나’와의 거리가 저 달처럼 멀어지자 그때야 임이 사무치게 그리운 대상임을 깨닫는다. 하지만, 이제는 그 임과 함께할 수 없기에 서러움이 물밀듯이 밀려온다는 내용이다.

시를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추석날 엄마 일 도와드리고 엄마가 차려준 음식을 맛있게 배부르게 먹으라고 당부한다. 엄마가 “우리 딸 많이 먹어”라고 말할 때 ‘살찌면 어쩔 거냐’면서 짜증 부리지 말라고. 엄마의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고맙습니다, 정말 맛있어요, 하면서 볼이 미어터지게 먹으라고. 부모님 살아생전에 섬기길 다하라는 말이 있다. 부모님 돌아가신 뒤에 상다리가 휘도록 차례 상을 차린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부모님은 저 달처럼 멀리 계시는 것을. 그러니 부모님 살아생전에 어깨 한 번 더 주물러드리고, 추석날 엄마가 정성껏 차린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이 효도 아니겠는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라는 후회를 되풀이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 듯하다. 그러나 가끔씩 ‘모래알 같은 이름’을 불러보면서 인연의 소중함을 생각하고, 그들이 가까이 있을 때 사무치도록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본다면, 그런 후회를 조금이라도 덜 하게 될 듯하다.

이번 추석날도 풍요로운 보름달이 환하게 세상을 밝힐 것이다. 나 또한 조상의 음덕을 기리고, 부모님의 은혜를 새삼 떠올리고,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하고 싶다. 그리고 팔순 노모의 어깨도 시원하게 주물러드리면서 모든 이들의 평안을 달님에게 두 손 모아 기원 드리고 싶다.
2014-09-05 30면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추계기구’ 의정 갈등 돌파구 될까
정부가 ‘의료인력 수급 추계기구’ 구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 기구 각 분과위원회 전문가 추천권 과반수를 의사단체 등에 줘 의료인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한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의사들은 2025학년도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 없이 기구 참여는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 추계기구 설립이 의정 갈등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요?
그렇다
아니다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