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호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지역발전연구실장
세계적인 정보통신 비평가 매클루언의 지적처럼 ‘매체가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현상이 지금 우리 사회 도처에서 목도되고 있다. 지금 우리가 한시도 손에서 떼 놓지 못하는 게 뭔가. 휴대전화다. 커뮤니케이션 ‘매체’에 따라 형성되는 사회의 형국이 바로 우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인류문명 자체가 정보기술에 바탕을 두고 있는 현실에서 휴대전화나 정보통신기기 사용 자체를 탓할 바는 못 된다. 문제는 너나없이 거의 모두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귀가 따가울 정도로 떠들고 있다는 것이다. 지하철이나 버스, 길거리나 정류장, 식당이나 회의장 등을 한번 둘러보라.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로 아예 방송을 하고 있다. 여기에는 남자와 여자, 노인과 아이,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의 구별이 없다. 만원 버스나 지하철에서 휴대전화를 보느라고 앞사람 등을 찍어 눌러도 미안하다는 소리 하나 없다. 우리 사회의 슬픈 단면이자 부끄러운 자기 노출증이다.
물론 ‘피로사회’, ‘투명사회’의 저술로 유명해진 재독 한국 철학자 윤병철의 지적처럼 정보화 사회 자체가 누구나 정보발신의 주체가 됨으로써 자신의 사생활을 떠벌리고 싶은 속성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정보화가 고도로 진전될수록 개인의 사생활 보호가 적어지는 ‘포스트 프라이버시’(post-privacy) 사회가 도래한다는 점을 백번 감안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도가 지나치다. 안하무인 격이다. 정보강국이란 미명 아래 우리가 시나브로 자기도취적인 나르시시즘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트위터, 블로그에서도 사생활 홍보에 치열하다. 예전 같으면 고문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고, 외국 같으면 개인의 사생활이기 때문에 관심도 없을 법한 정보를 자발적으로 발송하고 또 그걸 가지고 시시덕거린다.
우리는 왜 대중공간에서 손으로 입을 가리고 가급적 조용하게 말하거나 짧게 이야기하지 못할까. 남을 아랑곳하지 않고 개인 사생활을 그렇게 떠들어 댈까. 정보화 사회의 속성이 ‘의견 발송 사회’이며 포스트 프라이버시 사회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병적이다. 정보발달의 속성이 그렇다고 핑계를 대기에는 짜증 유발이 너무 많다. 사회변혁을 위해 개개인부터 작은 실천이 필요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개인의 각성을 통해서 남을 위한 배려가 생기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심지어 이것 자체를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정보통신의 활용이 급격히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합당한 도덕교육이 지체되고 있는 점이다. 일부 학교에서 시행하는 정보통신 도덕교육은 정보통신 중독 예방과 악플·개인정보도용 방지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마저도 일회적 이벤트이다. 지금 제대로 처방을 하지 않으면 향후 버스 정류장이나 아파트의 금연 구역처럼 ‘통화금지 구역’이 생기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는가. 지금부터라도 학교 정규과정에 정보통신 사용 윤리교육을 편성하고 이를 강화해야 한다. 가정에서도 정보통신 예절을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정보적 생활양식으로의 변화가 가져올 수 있는 도덕 부재 사회의 덫에서 우리 모두가 익사하지 않는 방법이 될 것이다.
2014-08-2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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