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규제로는 대학교육의 미래 못 연다/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열린세상] 규제로는 대학교육의 미래 못 연다/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입력 2014-07-28 00:00
수정 2014-07-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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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혹시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업무가 가까운 장래에 인간이 아닌 자동화기기, 즉 로봇으로 대체되지 않을까 걱정해 보신 경험이 있는가. 산업혁명 이후 인간이 해 오던 작업들이 점차로 인간의 힘이 아닌 기계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 이렇게 인간이 하던 작업들이 기계나 로봇의 업무로 전환되는 과정은 지금도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0년간의 전환과 지금부터의 전환이 다를 수 있는 것은 과거의 전환은 대부분 인간의 물리적인 힘이 기계의 물리적인 힘으로 전환되어 온 것에 비해 앞으로는 인간의 지적인 작업 또한 기계나 로봇 또는 컴퓨터의 지적인 작업으로 전환되는 작업이 주를 이룰 것이라는 점이다.

인간 사회의 지적인 생산 과정의 중심이 되고 있는 대학 사회만큼 이러한 변화를 실감하고 있는 곳이 없지 않을까 싶다. 전 세계적으로 대학 사회를 크게 흔들어 놓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변화가 바로 온라인 교육이다. 지금까지 몇 천년 동안 지속됐던 교실에 학생들을 앉혀 놓고 칠판에 교수들이 강의하던 형태의 대학교육이 인터넷과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발전에 의해 완전히 바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컴퓨터 모니터에서 강의하는 교수는 한국에 거주하는 교수가 아니고 해외의 명문대학의 유명한 교수일 가능성이 큰데, 일단 인터넷으로 온라인 강의가 시작되면 강의를 하는 교수가 세계 어디에 있든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기술이 발전해 한발 더 나아가면 실제로 교수가 강의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미리 녹화해 둔 영상으로 강의하면서 학생들이 질문할 경우에는 음성 인식 장치를 통해 질문을 이해하고 미리 준비된 답변 영상으로 바꾸어 이에 대답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3차원 동영상이 개발되면 해외 명문대학의 교수가 바로 자신의 앞에서 개인지도를 해 주는 것처럼 느끼면서 온라인 수업을 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웬만한 대학보다 온라인이 훨씬 양질의 강의를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온라인 강의의 수업료가 현재 대학의 수업료보다 저렴할 것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하버드 대학의 유명한 교수가 정성들여 온라인 강의를 만들면 전 세계 몇 천만명의 학생들이 매년 그 강의를 듣게 될 것이고 강의 수강료를 아주 낮게 책정하더라도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므로 온라인 강의가 확산되면 대학의 등록금은 지금보다 훨씬 낮아지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금 국내에 존재하는 대다수의 대학들이 가까운 장래에 온라인 강의에 밀려서 문을 닫게 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온라인 강의에 의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는 강의가 바로 난이도가 낮고 수강자가 많은 교양과목이다. 난이도가 높은 고학년의 과목들은 새로운 학문 발전에 따라서 강의 내용이 자주 변경되며, 수강하는 학생의 숫자도 적기 때문에 온라인 교육이 들어오기에 가장 어려운 반면, 난이도가 낮고 강의 내용이 거의 변화가 없는 대형 강의들이 가장 먼저 온라인 강의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즉 새로운 연구와 결합하지 않은 입문 수준의 강의들이 가장 먼저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현재 국내의 많은 대학들이 이러한 변화를 감지하고 대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한국 정부가 이런 교육계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앞으로 외국의 온라인 강의에 밀려서 국내 대학들이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중요한 변화의 시기에 한국 정부의 교육 관련 정책은 오로지 단기적인 민원만 중시하고 입시 관련 규제만 점차 더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교육 분야의 세계적인 경쟁력에는 전혀 관심조차 없는 모습이다.

이렇게 한국의 대학들을 규제해서 정부의 정책에 잘 순응하도록 하는 데에만 우리 정부가 신경을 쓴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규제해 온 대학들이 해외 대학들에 밀려서 사라지는 당황스러운 결과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교육 당국의 올바른 상황 판단이 필요하다. 규제보다는 교육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변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2014-07-2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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