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뇌물을 받은 사실이 밝혀져서 문책을 받는 관리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답변이었지만,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본 유방은 진평에게 계속 하던 일을 하라고 돌려보냈다고 한다. 이후 진평은 여러 가지 지혜를 발휘해 유방의 생명을 수차례에 걸쳐 구해 주었고, 결국 항우를 물리치고 중국을 통일하는 데에 큰 공헌을 했을 뿐 아니라 유방이 죽고 나서도 반란이 일어났을 때 이를 진압해 유방의 자손들이 한나라를 오랫동안 통치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고 한다.
한나라의 왕이었던 유방으로서는 뇌물을 받은 비리를 저지르고도 당당했던 진평을 내치지 않고 그대로 활용했던 것이 너무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던 것이다. 만일 진평이 대한민국의 장관 후보였다면 진평이 공직을 맡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일 것이다. 진평의 재주가 아깝다고 해도 공직자가 뇌물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도 중대한 범죄행위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장관과 같은 중요한 공직에 등용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평과 같이 뛰어난 능력이 있는 사람을 등용하지 못한다면 국가로서는 분명 손해를 보는 측면이 있다는 생각 또한 어느 국민이나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고위 공직에 나가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청렴성이 요구된다는 생각이 든다. 뇌물 수수와 같은 중대한 결격사유라면 모를까, 교통 신호 위반이나 애매한 표절 시비 등으로 고위 공직자의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몇 달 전에 미국 잡지에 실린 사설이 기억에 남는다. 이 사설에서는 프랑스의 대통령들이 부끄러운 여성 편력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이 언급돼 있었다. 현재의 올랑드 대통령은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 여성과 동거하면서 대통령에 취임했는데 임기 중에 다른 여성과 스캔들을 일으켰으며,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 또한 본래의 부인과 이혼하고 임기 중에 모델 출신의 여자 친구와 결혼했다. 이런 일들은 미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미국의 고위 공직자들에게 너무도 심한 청렴성을 요구하게 되면 청렴성은 떨어지지만, 능력이 출중한 인물들을 놓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으니 이런 점에 대해 한번 심각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내가 본 사설의 요지였다.
뇌물의 수수, 복잡한 이성 관계는 공직자에게 있어서는 심각한 결격 사유다. 이런 결격 사유에도 불구하고 공직을 맡겨야 할 정도로 능력이 출중한 인물은 많지 않다. 하지만, 정말로 중대한 결격 사유가 아닌 이유로 고위 공직자의 자격을 논하는 것 또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는 매우 염려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이렇게 지나치게 엄격한 청렴성의 잣대 때문에 능력 있는 많은 공직자 후보들이 기회가 와도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자격이 부족한 사람이 공직자 후보가 돼 또 다른 국민적 논란과 실망을 일으키고 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입시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인물이 ‘엄친아’ 즉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운동도 잘하는 엄마 친구 아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엄친아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국민들도 존재하지 않는 엄친아만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번 해 봐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민간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수십억원의 연봉을 받는 것이 현재의 대한민국이다.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인물이 이런 금전적 이득을 포기하고 공익을 위해 봉사하도록 하려면 어떤 방법이 필요한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2014-06-2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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