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의 원자로는 23기. 그 가운데 현재 정지돼 있는 원자로가 6기다. 일본은 55기의 원자로 모두가 정지돼 있다. 두 나라 모두 정전대란을 막기 귀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실정이다. 삼성이 전력 사정이 풍부한 서안을 선택한 것은 잘한 일이다. 서안은 석탄이 풍부한 지역이라 전기 공급이 끊길 염려 없이 공장을 가동할 수 있고, 반도체는 무게가 가벼운 상품이라 내륙 도로 시스템이 아직 원활치 못한 육상 수송 인프라를 이용할 필요 없이 비행기로 상품을 수송하면 된다.
미국이 서부를 개척하며 오늘날의 풍요로운 미국이 됐듯이 중국도 서부 개척을 하며 중국의 경제발전은 물론 세계 경영과 민주적 자본주의의 기본을 배워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서안의 고민은 대기 오염이 너무 심해 폐질환을 비롯한 호흡기 환자가 크게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병마용의 유물들이 수천년 동안 잘 보존된 배경에는 서안 지역은 황토 지역이었기 때문인데 그 반면에 흙먼지도 심각하다. 반도체 공장은 미세한 분진과 자그마한 진동도 용납되지 않는 시설이어야 하는데 분진 문제는 첨단 집진장치로 잘 해결된다고 하겠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공기 오염을 해결하지 않고는 안정된 생산 환경을 구축할 수 없다. 요즈음 한국 병원들이 국제 병원을 개원하면서 외국 환자들이 증가하고 있는데 서안은 한국의 높은 의료기술도 중국에 수출할 수 있는 좋은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의 정보기술(IT) 산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우리의 사정은 낙관적이지 않다. 올여름도 위태위태한 전력 비상을 겨우 넘겼다. 전기를 더 많이 쓰는 겨울을 어떻게 날지 정부의 고민이 크다. 전기를 풍부하게 쓰지 못하는 산업체에 공장 가동 중단으로 인한 보조금마저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해야 하는 한국의 전력 사정은 근본적인 대책으로 재설정돼야 한다. 일본은 후쿠시마 사태로 55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모두 중단하는 바람에 천연가스 수입으로 70조원 가까이 썼다. 한국의 1년 총예산을 약 340조원으로 계상하면 거의 20%에 해당하는 막대한 돈이다. 그래서 일본 아베 정권도 원자력을 다시 시작하려고 정책 방향을 선회했다.
석유나 천연가스와 같은 천연자원이 없고 돈마저 없으면 원자력 발전을 중단할 수 없다. 다행히 한국은 일본처럼 지진이 많지 않은 나라라는 지리적 혜택이 있다. 그런 만큼 원전 비리만 철저히 차단하고 안전성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한다면 원전을 통해 안정적으로 전력을 확보할 수 있는 나라다. 프랑스는 70% 이상의 전력을 원자력에 의존해도 끄떡없지 아니한가. 전력 생산의 약 80%를 석탄에 의존하고 있는 중국은 앞으로 약 100기의 원자로를 건설해야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버텨 낼 수 있다. 원전 비리에 대한 수사가 어느 정도 종결돼 가고 있다. 원자력 업계는 그런 모습을 냉정한 눈으로 지켜보며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거듭 태어나야 할 것이다.
2013-09-1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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