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학길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벤 버냉키 미국 연준 의장이 지난 7월 17일 양적완화 조치가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고 발언한 것은 당초 6월에 있었던 출구전략 일정을 제시한 이후 시장의 혼란을 진정시키기 위한 발언이었음이 점점 명백해지고 있다. 문제는 미국경제의 단기경로가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면서 실업문제가 더 이상 개선되지 않고 경기 위축이 계속되는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의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는 데 있다. 이와 같이 금년도 하반기 중에 미국경제가 단기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의 방향으로 움직이며 양적완화의 축소가 점차 가시화될 것으로 전망할 때, 우리는 하반기 경제운용에 어떻게 대비해 나가야 할 것인가를 고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제는 정치권이나 정부 모두 이와 같이 다가오고 있는 ‘양적완화 축소의 위기’를 아직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사실 지난 한달여 동안 진행되어 온 복지-증세의 논쟁은 단기적인 위기관리정책의 범위를 벗어난 중장기적인 정책과제이며 단기적으로는 해결할 방법이 없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여야는 잘 인식하고 있다. 다만 정권 초기의 당리당략에 밀려 출구 없는 소모적 논쟁을 계속해 왔다. 이제는 여야가 한 발씩 물러나 실현가능한 복지와 실현가능한 증세계획을 내놓아야 할 때다. 대선 전의 공약을 볼모로 삼을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선에서 복지규모의 축소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증세를 병행해야 한다. 바로 이러한 중장기정책을 여야가 합의하고 정부가 구체적인 방안들을 성안하는 것이야말로 ‘출구전략’이 가시화되는 단계에 대비한 가장 확실한 위기관리정책이다.
복지 규모는 계속 팽창해야 하므로 증세밖에는 대안이 없다는 주장이나, 복지 규모는 묶어두고 증세도 생각할 수 없다는 주장은 전부 다가오는 출구전략에 대한 리스크 관리를 포기하자는 주장과 같다. 만일 미국경제가 금년 하반기 중으로 출구전략이 가시화되면서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진행된다면 먼저 우리의 수출전선은 크게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왜냐하면 미국의 ‘출구전략’으로 브릭스(BRICS)를 중심으로 한 신흥공업국가들과 한국·타이완·싱가포르 등에 대한 미국의 투자가 U턴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동시에 중국을 비롯한 신흥공업국들의 경기 위축은 우리의 가전제품·반도체·조선·철강·자동차에 대한 수요 감소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전 세계적인 탈원전 추세에다 중동정세의 악화 등으로 유가 상승이 이루어지면 수입인플레 압력의 상승으로 국내에도 스태그플레이션적인 상황이 도래될 수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한 2013년 3분기 기업경기전망지수(BSI)는 2분기(99)보다 2포인트 하락한 97로 나타났으며, 이는 2011년 4분기(94) 이후 8분기 연속 기준치(100)를 밑돌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한편 출구전략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4대 은행들은 1년 새 순익이 30% 감소하는 사이에 감원을 비롯한 구조조정은 강성노조의 ‘금년도 8.1% 임금인상 요구’에 묶여 엄두도 못 내고 있으며, 직원 총수는 오히려 863명이 증가했다고 한다. 특히 조선·해운·건설산업에서 부실기업들에 대한 구조조정과 퇴출 조치를 시행하지 못하고 이들에 대한 부도 연장에 모든 정책금융기관과 시중은행들이 볼모로 잡혀 있다. 다가오는 위기에 대해서 정부와 기업은 물론 금융권 전체가 뼈아픈 구조조정을 수행하지 않는 한 한국경제의 출구는 보이지 않는 상태에 있다.
2013-08-24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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