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교육개혁, 급할수록 돌아가야/김주성 한국교원대 총장

[열린세상] 교육개혁, 급할수록 돌아가야/김주성 한국교원대 총장

입력 2013-08-22 00:00
수정 2013-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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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성 한국교원대 총장
김주성 한국교원대 총장
무언가 개혁하려 할 때는 속도전을 벌일 곳이 있고 벌여서는 안 될 곳이 있다. 경제 분야라면 되도록 빨리 속도전을 벌여야 하겠지만, 교육 분야만큼은 절대로 속도전을 벌여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빨리빨리 정신’이 가장 만발했던 곳이 교육 분야였던 것 같다. 새 정부는 교육 분야의 개혁 속도를 줄여주었으면 한다. 그런데 요즈음 갑자기 서두르는 것 같아 걱정이다.

교육개혁에서 속도전을 피해야 하는 까닭은, 경제학 용어를 빌린다면, 자본의 회임 기간이 길기 때문이다. 아이가 태어나서 사회활동을 시작하려면 적어도 유·초·중등교육기간 14년, 고등교육기간까지 합하면 18년 동안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렇게 장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교육은 늘 장기적인 관점에서 최소한으로 천천히 개혁해야 한다. 그래야, 교육 현장이 안정되고 아이들도 균형감 있게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교육개혁의 속도를 가파르게 높여왔다. 교육개혁의 꽃인 교육과정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의 개혁 조급증이 얼마나 깊어졌는지 확연히 드러난다.

해방되고 나서 일제 황국신민교육을 청산하고 미 군정에서 민주시민 교육을 시작한 때가 1946년 9월이었는데, 이때부터 1955년까지를 교수요목기(敎授要目期)라고 한다. 우리 정부에서 신교육을 펼친 때가 1955년 8월이었는데, 이 새로운 교육과정을 제1차 교육과정으로 부른다. 민족주체성과 경제발전을 강조했던 제2차 교육과정이 1963년에 시작되었고, 학문중심 교육과정으로 불렸던 제3차 교육과정이 1973년에 개편되었다. 복지사회를 목표로 했던 제4차 교육과정이 1981년에 개편되는 등 이때까지만 해도 교육과정은 거의 10년 간격으로 개편되었다.

그 뒤 민주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교육과정의 개편 속도는 5년 주기로 빨라졌다. 1987년 제5차 교육과정, 1992년 제6차 교육과정, 1997년에 제7차 교육과정이 개편되었다. 2004년에는 수시개정체제로 바뀌어 개혁속도는 숨 막힐 지경이 되었다. 2007년에 대규모로 교육과정이 개편되고 나서 미처 다 시행되기도 전에 2009년에 또다시 대규모로 개편되었다. 교육현장에서는 앞뒤 두 개의 교육과정이 뒤엉키는 기현상까지 벌어졌다.

교육과정은 시대변화를 반영해야 한다. 사회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면 교육과정의 개편 속도도 빨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더라도 서로 다른 교육과정이 뒤엉킬 정도의 교육개혁 속도라면 아무래도 속도위반처럼 보인다. 이처럼 개혁 조급증에 쫓긴다면 교육현장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조급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아무리 절실하더라도 생각하고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요구하더라도 다른 사람들과 깊이 의논해야 한다. 아무리 문제가 심각하더라도 진단과 처방을 서둘러서는 안 된다. 교육에 관한 한 진단과 처방은 긴 호흡으로 차분하게 해 나가야 한다. 교육현장에서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교육과정만 개혁한 것도 아니다. 1995년의 5·31 교육개혁안이 발표된 뒤 정권마다 수많은 교육개혁을 해왔다. 어느 정권이든 교육의 미래를 위한 마음으로 개혁했겠지만, 교육정책들의 상당수는 교육현장에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교육현장의 반발이나 정책 부작용 때문에 다음 정권에서 폐기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그런지 교육현장은 언제나 혼란스럽다.

교육정책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려면 무엇보다도 정책당국에서 개혁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 최근에 부각된 한국사의 필수화 문제나 수능 반영 문제도 갑작스레 서두르면 안 된다. 청소년의 역사인식 문제는 정말로 심각하고 절실하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차분하게 진단하고 정확하게 처방해야 한다. 조급하게 서두르면 바라는 효과를 얻지 못한다. 최악의 경우에는 얻을 것도 잃게 되지 않을까 싶다.

한국사 필수화나 수능 반영보다 시급한 것이 한국사 교육의 내용 문제이다. 교육계의 피나는 노력으로 먼저 한국사의 교과내용부터 정상화시켜야 한다. 그런데도 정책당국이 당일치기하듯 밀어붙이는 것 같아 못내 아쉽다.

2013-08-2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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