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원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대북관계와 주변 4강 관계는 한반도 대외정책의 핵심이다. 올 초부터 심각하게 전개된 북한의 핵실험과 유엔의 제재, 그리고 개성공단 폐쇄에 이르는 일련의 긴장국면은 새 정부의 가장 큰 시련이 되고 있다. 이와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한·미 간의 안보협력과 정책공조 역시 지난번 대통령의 방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과제였다. 이달 말 예정된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점차 중요해지는 한·중관계에 대한 비중 있는 논의가 기대된다. 한편 주변 국가들과의 감정적 대립을 불사하고 있는 일본의 우경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고민도 깊어만 간다.
그런데 이런 여러 현안들을 죽 펼쳐 놓으면 무언가 큰 그림이 떠올라야 하는데 그게 보이지 않는다. 퍼즐조각 하나하나가 다 중요하지만 이것들을 다 맞추었을 때 전체가 하나로 뭉쳐지는 그림이 안 보인다는 얘기다. 새 정부의 입장에서는 각각의 퍼즐조각을 찾기도 힘겨운데 큰 그림도 함께 그리라니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퍼즐이 맞추어지는 과정을 관람해야 하는 국민들 입장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현안들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종착점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부의 ‘그랜드 디자인’이 약하다는 데 있다. 국내정치 차원에서는 다양한 공약들이 정책화되면서 창조경제,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등의 그림들이 빠르게 그려지고 있다. 그런데 대외정책의 차원에서는 다양한 이슈들을 한데 모으는 국가전략, 큰 그림이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말하자면 한반도 현안과 주변 4강에 관련된 이슈들이 결국에는 우리의 어떤 미래를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거대 담론이 없다는 것이다. 원칙을 중시하는 철학이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도 중요한 정책 가이드라인이지만, 어디까지나 ‘과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실무경험이 풍부한 외교안보라인이 많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이들을 한데 묶는 통합 프레임워크가 여전히 선명하지 않다.
백범 김구는 자신이 원하는 미래의 국가가 ‘아름다운 나라’로서 ‘문화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왜 그래야 하는지도 분명하게 언급했다. 우리는 스스로 풍족하게 살 수 있을 만큼의 경제력과 남의 침략을 막아낼 정도의 군사력만 가지면 족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다만 ‘문화력’만큼은 한없이 가지고 싶어 했는데, 이를 통해 우리뿐만 아니라 남까지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물질적 요소가 아니라 정신을 배양하는 일이며, 이를 위해 문화가 필수적 요소라고 보았다. 백범은 우리나라가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으로서 다른 나라의 모범이 되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평화의 기틀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백범이 신생 대한민국의 정부를 맡을 기회를 가지지는 못했지만 그의 ‘문화국가’는 분명 미래의 나라 모습을 그려낸 큰 그림이었다. 매번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마다 국가적 청사진을 제시하고 이를 하나로 묶어 미래의 청사진으로 그려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국가전략은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는 토대로서 의미가 있지만, 정부가 얼마나 일을 잘하는가를 판단할 수 있는 궁극적인 기준점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지금의 복잡다단한 현안들을 헤쳐 나가면서 장차 우리가 도달하려는 목표가 어디인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꼭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세계무대의 ‘주연 배우’로서 우뚝 서는 문화국가를 제창했던 백범, 국가적 ‘그랜드 디자인’을 그려야 하는 지금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아야 할 선각자가 아닐까?
2013-06-1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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