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언제나 나는 햇볕에 조바심이 난다. 이 귀한 볕을 어떻게 그냥 오셨다 그냥 가시게 하나.
우리 집 마당은 무엇이든 마르느라 붐볐다. 여름 가을에는 밭 열매들이 다투어 누웠다. 얼어붙는 한겨울에도 봉지봉지 묶였던 묵나물들이 볕을 쬐러 나왔다. 봄이 오면 그 마당에 먼 산 진달래가 먼저 왔다. 꽃술 담글 장독은 뚜껑이 열려 볕바라기. 포대째 업혀 온 진달래꽃이 이슬을 가시느라 마당을 덮었다.
마당을 지킨 것은 볕이었을까. “저 볕 한자락, 뚝 끊어다 치마저고리 해 입었으면” 한글도 못 깨치신 할머니가 그 마당에서는 시를 썼다. 내가 지금 불러내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마당인지, 마당의 볕인지, 무릎이 턱에 닿게 쪼그려 앉아 그 마당에 살던 할머니 뒷등인지.
2023-02-17 2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