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수십 년 전 집에서 그와 아버지가 나누던 얘기를 귀동냥하던 중 “짜장면 여섯 그릇을 먹었는데도 배가 고프더라”며 씩 웃던 모습이 떠오른다. 심각한 얘기들이 많았을 텐데 유독 그 말이 기억에 남는다. 계엄군의 총에 맞아 하반신이 마비됐고 평생 후유증으로 고통스러워했던 그였지만, 어린 눈에는 기운 센 장사(壯士) 같았다.
진각 스님이자 광주의 시민군이고, 5·18민주화운동 유공자이자 계엄군 헬기 기총소사의 증인인 고 이광영(1953년생)씨다. 그는 지난 23일 ‘5·18에 원한도, 서운함도 다 묻고 가겠다’는 유서를 남긴 채 세상을 등졌다. 공교롭게 같은 날 세상을 떠난 학살자의 소식을 들었는지 알 수 없다. 80년 광주를 가두방송으로 알렸던 전옥주씨도 지난 2월 세상을 떠났다. 고통과 트라우마로 점철된 신산한 삶을 산 영웅들이 하나둘씩 스러져 간다. 다시 한번 명복을 빈다.
2021-11-30 2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