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망우리공원을 다녀왔다. 요즘 평해길(관동대로) 경기옛길을 걸으면서 알게 된 유관순 열사의 합장비를 보기 위해서다. 유관순 열사의 유해만을 묻은 묘는 없다. 충남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 열사 생가의 뒷산 매봉산 중턱에 열사의 ‘초혼묘’(招魂墓)가 있지만 시신이나 유골이 든 무덤은 아니다. 1919년 4월 1일 천안 아우내장터 만세시위를 주동한 열사는 일본 헌병에 체포돼 징역 3년형을 받고 서대문감옥에 수감됐다. 1920년 3월 1일에는 옥중 만세시위를 주도하다 일본 헌병의 모진 고문 끝에 9월 28일 오전 8시 20분 감옥에서 19세 꽃다운 나이에 숨졌다. 모교인 이화학당에서 시신을 인도해 10월 14일 정동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른 뒤 일제의 삼엄한 경비하에 묘비도 없이 이태원 공동묘지에 매장됐다. 지금의 이태원 이슬람사원 인근이다. 1936년 이태원이 일제의 군용기지로 바뀜에 따라 망우리 공동묘지로 옮겨 오는 과정에서 아무도 유관순 열사의 유해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무연고 분묘로 처리돼 2만 8000기 유해와 함께 화장된 뒤 합장묘에 섞여 있다. 이맘때면 흰 저고리에 흑색 치마를 입은 열사의 빛바랜 사진이 더욱 애잔하게 다가온다. 3·1절을 상징하는 인물이지만 온전한 유해조차 보존하지 못한 죄스러움 때문이다.
jr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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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1 2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