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밤의 향기/황수정 논설위원

[길섶에서] 밤의 향기/황수정 논설위원

황수정 기자
황수정 기자
입력 2017-12-28 22:30
수정 2017-12-28 22:38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14
단정하게 포장된 깻잎 묶음을 펼치자니 후각이 감감하다. 엄동에 칠팔월 들녘의 들깨향이야 언감생심이다. 그래도 명색이 깻잎 아닌가. 코끝에 갖다 대고 흔들어 봐도 들깨밭 근처에나 갔다 왔나 싶게 맹맹하다.

시골집 뒤란에는 봄여름 내내 들깨가 우썩우썩 자랐다. 장독대를 둘러치고 위세 좋게 너울거렸는데, 살펴보면 고작 두세 포기가 장차게 품을 벌린 거였다. 더위에 짓무른 한여름밤에도 집안 공기는 들깨향이 은근했다. 바람 한줄기라도 문득 불면 마루 깊숙이 누운 우리 집 사람들은 한밤중에 들깨들이 어쩌고 있는지 말 안 해도 알았다. 그때는 해가 지면 칠흑의 밤이었다.

비닐하우스에서 낮밤 인공조명을 쐬면 들깨는 향기를 잃는다 한다. 밤의 고요를 빼앗겨 제 향기를 털리는 것은 깻잎만일까.

별을 잊고 달빛을 놓치는 불면의 도시. 절대 고요의 밤에 등짐 내려놓고 다리 한번 뻗어 보지 못한다. 어두워져도 마음을 뉘어 재울 줄 모른다.

밤이 밤다워야 들깨는 들깨다워지는데. 칠흑의 밤에 머리가 젖도록 까맣게 잠겨 보고 싶은데.

sjh@seoul.co.kr
2017-12-29 31면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전북특별자치도 2036년 하계올림픽 유치 가능할까?
전북도가 2036년 하계올림픽 유치 도전을 공식화했습니다. 전북도는 오래전부터 유치를 준비해 왔다며 자신감을 보였지만 지난해 ‘세계잼버리’ 부실운영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상황이라 유치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전북도의 올림픽 유치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가능하다
불가능하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