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가을, 노을/진경호 논설위원

[길섶에서] 가을, 노을/진경호 논설위원

진경호 기자
진경호 기자
입력 2017-10-29 17:46
수정 2017-10-29 19:14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14
가을은, 어쩌면 노을의 계절이다. 아니 단언컨대 노을의 계절이다. 한낮 푸르다 못해 창백한 하늘은 그저 검붉은 절정으로 소용돌이치는 노을을 노래하기 위한 전주에 불과한지 모른다. 뜨거운 여름에 지친 해가 서둘러 제 집 찾아 먼 산을 넘을 즈음 노을은 하릴없이 빈둥대던 양떼구름, 비늘구름을 부르르 흔들어 대며 빨갛게 신열을 앓는다. 태양과 대지가 하나 돼 나누는 운우지정(雲雨之情)의 오르가즘일 수도 있겠고, 머잖아 캄캄한 어둠 속으로 스러질 모든 것들의 찬연한 저항일 수도 있겠다. 러시아 문호들에게 한없는 영감을 안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장엄한 노을에 몸서리친 적이 있다. 가끔 주말 들녘에 나가 맞는 우리의 가을 노을도 사실 이 못지않다. 미처 받아 적지 못할 만큼 수많은 시어(詩語)들이 은빛으로 반짝이며 쏟아진다.

가장 아름다울 수 있고, 또 마땅히 그래야 할 삶의 석양을 탐욕과 시기로 일그러뜨리는 군상들이 많다. 노욕이다. 가을 저녁, 고개를 들어 노을을 꼭 봤으면 싶다. 다 타버린 노을이 캄캄한 어둠에 잠기면 비로소 하나 둘 셋, 별이 태어난다. 삶의 서사가 거기 있다.

jade@seoul.co.kr
2017-10-30 27면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전북특별자치도 2036년 하계올림픽 유치 가능할까?
전북도가 2036년 하계올림픽 유치 도전을 공식화했습니다. 전북도는 오래전부터 유치를 준비해 왔다며 자신감을 보였지만 지난해 ‘세계잼버리’ 부실운영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상황이라 유치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전북도의 올림픽 유치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가능하다
불가능하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