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어쩌면 노을의 계절이다. 아니 단언컨대 노을의 계절이다. 한낮 푸르다 못해 창백한 하늘은 그저 검붉은 절정으로 소용돌이치는 노을을 노래하기 위한 전주에 불과한지 모른다. 뜨거운 여름에 지친 해가 서둘러 제 집 찾아 먼 산을 넘을 즈음 노을은 하릴없이 빈둥대던 양떼구름, 비늘구름을 부르르 흔들어 대며 빨갛게 신열을 앓는다. 태양과 대지가 하나 돼 나누는 운우지정(雲雨之情)의 오르가즘일 수도 있겠고, 머잖아 캄캄한 어둠 속으로 스러질 모든 것들의 찬연한 저항일 수도 있겠다. 러시아 문호들에게 한없는 영감을 안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장엄한 노을에 몸서리친 적이 있다. 가끔 주말 들녘에 나가 맞는 우리의 가을 노을도 사실 이 못지않다. 미처 받아 적지 못할 만큼 수많은 시어(詩語)들이 은빛으로 반짝이며 쏟아진다.
가장 아름다울 수 있고, 또 마땅히 그래야 할 삶의 석양을 탐욕과 시기로 일그러뜨리는 군상들이 많다. 노욕이다. 가을 저녁, 고개를 들어 노을을 꼭 봤으면 싶다. 다 타버린 노을이 캄캄한 어둠에 잠기면 비로소 하나 둘 셋, 별이 태어난다. 삶의 서사가 거기 있다.
jade@seoul.co.kr
가장 아름다울 수 있고, 또 마땅히 그래야 할 삶의 석양을 탐욕과 시기로 일그러뜨리는 군상들이 많다. 노욕이다. 가을 저녁, 고개를 들어 노을을 꼭 봤으면 싶다. 다 타버린 노을이 캄캄한 어둠에 잠기면 비로소 하나 둘 셋, 별이 태어난다. 삶의 서사가 거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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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30 27면